최근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하반기 대기업 투자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데 이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구성한 비상경제대책반의 지속 여부도 불투명해지면서 전경련의 대기업에 대한 투자 독려 의지가 꺾인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조석래 회장은 지난달 말 '제주하계포럼'에 참석한 자리에서“지금 투자를 하라는데,사회가 이렇게 불안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투자를 하며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정부의 기업투자 압박에 대해 공개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냈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투자를 하며 더 나아가 조 회장은“어려운 경제를 살려 나가는데 정치가 얼마 만큼 우리에게 도움을 줬는지 물어보고 싶다”면서 정치권을 정면으로 비난했다.
올해 초 정부의 비상경제상황실(워룸) 운영에 발맞춰 비상경제대책반을 가동하는 등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던 모습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다.
또 지난 6월 이후 두 달 이상 회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는 비상경제대책반의 하반기 운영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비상경제대책반은 투자촉진팀을 내부에 두고 대기업의 투자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해 왔다.
삼성, LG, 현대차, SK 등 전경련 주요 회원사들로 구성된 비상경제대책반은 지난 2월부터 한 달 간격으로 모였지만 6월 2일 6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두 달 째 열리지 않았다.
전경련 관계자는“지난 달 2일 민간투자합동회의를 하기 전에 10여분 정도 비공식적으로 모여 (비상경제대책반 회의를) 했다”면서 활동이 중단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정부의) 비상경제상황실이 여전히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멈출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8월 휴가기간이 지나고 9월에 회의 재개 여부를 논의할 것인데 (계속 운영할 것인지) 고민 중”이라고 말해 최종 결정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하반기 대기업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독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경련이 발을 빼기 위한 명분 마련에 들어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경제논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기업들이 투자할 할 테니 (정부는)더 이상 강제하지 말아 달라는 주장이 수면위로 올라 온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달했다.
전경련측은 대기업 투자 독려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전경련 다른 관계자는“투자 독려가 종료가 된 것이 아니”라면서“투자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자고 정부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투자를 더 하기 위해서는 희망이 있어야 하지 않나. 분위기를 만들려면 정치권도 협조를 해서 사회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조 회장의) 말이 나온 것”이라고 부연했다.
전경련과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연구원' 관계자도 하반기 대기업 투자가 멈춰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사연 이상동 경제연구센터장은“대기업들이 상황을 조금 더 두고 보자는 것”이라면서“하반기에 (투자를) 안 하겠다기보다는 자기들 스스로 기업의 개별적인 시각에 맞춰서 진행하겠다는 의미”로 풀이했다.
다만 이 센터장은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주요업종 기업이 국내 생산 케파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향으로 투자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현대의 경우 지난해 처음으로 해외 생산이 국내 생산을 앞지른 것에서 나타나듯 제조업체들은 국내 설비투자 보다 외부발주와 고용유연화라는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봤다. 즉 연구개발 등 상대적으로 소규모 투자 전개를 전망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예산의 조기집행을 통해 상반기 한국경제를 견인한 상황에서 하반기 민간기업의 투자에 목마르다는 점을 감안해 재계의 숙원인 '고용 유연화'에 정부가 더 적극 나서 달라는 신호로 해석한다.
이는 지난 4일 쌍용차 사태와 관련해 전경련이‘쌍용차 사태로 본 노사관계 현실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공권력 투입을 주저한 정부도 책임이 있다”며“해고 요건을 완화하게 되면 (쌍용차와 같은) 심각한 사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기업의 투자가 한국경제를 살리는 '전가의 보도'가 아니라는 시각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주선 선임연구위원은 “인턴사원 고용 등 기업은 정부의 정책에 호응하고 맞춰가는 경향이 있다”고 전제하면서“현재 대기업의 투자가 일자리에는 도움이 안 된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투자가 중요한데 그것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적극적인 투자가 하반기 한국경기 회복에 '마중물'이 될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전체 고용의 95%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생존이 담보돼야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