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무소속으로 출마시킨 뒤 단일화 한다는 야무진 꿈은 더 잔혹한 2차 가해다. 한덕수 대행은 계엄 트라우마를 소환하는 방아쇠다. 그가 비상계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와 무관하게 ‘권한대행’은 곧 ’나라 꼴’을 상징한다. 아직 아물 기미도 안보이는 유권자들의 상처를 기어이 긁어야겠다면 한 번 해보시라. 지난해 총선이 참패의 매운맛이라면 이번 대선에선 멸망의 마라맛을 경험하시게 될테니.
국민의힘은 시작부터 글러 먹었다. “이재명을 막겠다”니. 후보자나 유권자나 다 같은 한 표씩인데 무슨 재주로? 그 당 후보가 되면 남들 한 장씩만 가진 투표권을 한 500만개 쯤 쥐게 된다는 말인가? 아니면 그토록 못잃어하는 부정 선거라도 하겠다는 뜻인지.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을지 말지는 유권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범죄자’이건 ‘막산이’이건 ‘그래도 당신들 보단 낫다’는데 어쩔 건가. 계엄을 구경만 해놓고 사과 한 마디 없는 염치로, 파면당한 ‘1호 당원’을 내칠 배포도 없는 결기로 막긴 누굴 막겠다는 건가.
이재명 후보를 막을지 말지를 여태 결정 못한 유권자도 별로 없다. 그는 이번이 세 번째 대선 출마다. ‘드럼통’, ‘찢’, ‘아수라’, ‘전과4범’에 새삼 감흥이 있을 유권자가 어디 남았단 말인가. 대장동이 하루 이틀이며 재판 5건이 처음 듣는 얘기던가.
행여 여론조사에서 무당층, 혹은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고 답한 20~30%에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다면 꿈 깨라고 조언드린다. ‘반명 후보’를 줄줄이 나열했는데도 마뜩찮다는 그들이 결국은 투표장에 나가 ‘이재명 반대’에 투표할 것이라는 논리는 어느 석학의 이론인지.
평소라면 몰라도 선거가 시작된 마당에 ‘이재명은 안된다’는 구호는 폐기해야 마땅하다. ‘이재명’이 주어인 말에 아무리 부정어를 붙여 떠들어봤자 머릿속엔 이재명만 남는다. 국민의힘 후보인척 하고 있지만, 사실은 어둠의 이재명 선대위원장 역할을 맡은 거라면 제대로 성공하고 있으니 인정이다.
‘반명 빅텐트’도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지나가던 1인이 “이 텐트는 왜 만들었수?”라 묻는다고 상상해보자. “이재명 때문에요” 말고 무슨 말을 하겠나. 차라리 ‘김문수·나경원·안철수·양향자·유정복·이철우·한동훈·홍준표 빅텐트’라 하는게 백번 낫겠다, 최소한 “뭐라고요?”라며 한 번 더 물어보기라도 할테니.
국민의힘 후보들에겐 별로 궁금한 것도 없다. 맨날 보던 사람들이 맨날 하던 소리만 해대니 대선 공약 따위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한쪽에서 “인공지능(AI) 100조”를 외치니 다른 쪽에서 “우린 200조”로 받는 모습은 어디서 본 것만 같다. “너 관세 100%”를 던지니 “받고 25% 더”로 되치는 어느 두 나라 개싸움과 뭐가 다른지?
국민의힘은 ‘오죽하면 이재명이 1등인지’ 제대로 성찰했는지 의문스럽다. 물론 애당초 승리는 관심 없고 참패 뒤 당권이나 노린다는 얄팍한 계산으로 나온 후보들은 기대치도 없으니 예외다.
귀에서 쇠맛이 나는 ‘범죄자’ 논란에도 그가 선두인 현상의 밑바닥에는 ‘절망’이 깔려있다. 왼쪽과 오른쪽 끝에 서 있는 정치병 환자들에 선택지를 뺏겨버린 다수의 탄식이 그려내는 그래프다. 그 깊은 한숨을 이해한다면, 국민의힘에도 마침내 기회는 있다. 모두의 자존감을 나락으로 보내버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길이 열릴 수 있다. 그리고 대표시절 연전연승을 이끈 이준석 전 당 대표를 우파 단일 후보로 세운다면 그토록 갈망하는 "이재명을 막겠다"도 한 줄 빛이 보일지 모른다.
되겠냐고? 지지율 2%로 출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할 말이 있으시단다. "해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