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버티면 뭘 합니까? 중요한 일은 부하에게 시키고 영어 못한다는 이유로 밑에 직원들 앞에서 창피를 주는데요. 필요 없는 존재로 만들기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만듭니다.”
지난 6월께 HSBC 서울지점에 희망 퇴직한 A 간부의 하소연이다.
얼마 전 서울 모 지역에서 기자와 만난 A 씨는 약속시간보다 30분을 훌쩍 넘기고서야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알고 보니 생애 처음으로 실업급여를 받기위해 노동부에 들렸다 온 것이란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실업급여 신청을 처음 해봐서 뭐가 어떤지 알 수가 있어야죠. 몇몇 공무원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괜히 쑥스럽더군요”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A 씨는 이날 올해 초 HSBC은행에서 밴드(BAND)급 노조인 상급자 노조가 출범하게 된 이유와 당시 임원들이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에 대한 사연을 힘겹게 털어놨다.
또 최근 학사학위 문제로 변호사까지 섭외하며 20여 년간 근무한 HSBC은행과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먼저 HSBC은행이 문제가 된 것은 무리한 사업 확장 때문이라고 말했다.
A 씨는 “2~3년 전 HSBC은행이 펀드와 개인ㆍ기업금융대출, 크로스셀링(교차판매) 등의 분야를 늘리고 300여명의 인원을 새로 뽑았죠. 대표적으로 다이렉트 보험은 CF까지 선보이며 활성화 했는데 사실상 모두 실패했습니다. 여기에 금융위기까지 덮치면서 당시 뽑은 인원들을 대거 쫓아내야 했죠”라고 말했다.
그는 “이 때 타격이 된 사람들이 바로 임원들이었습니다. 일반 직원들은 그나마 노조라도 설립돼 있어 버틸 기둥은 있었지만 임원들은 그런 안전장치가 전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퇴직금 한 푼 안주고 내보내려고 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임원들 중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나서서 부당하다고 주장해주길 바랐지만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어요. 대부분 10~20여년 이상 근무한 사람들이기에 어떻게 하든 버티려고만 했다”라며 “하지만 인사부들이 그냥 놔두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일들은 부하 직원에게 시키고 심지어 외국 은행에서 영어도 못한다고 망신을 줬죠. 우리는 필요 없는 존재라는 것으로 후배들 앞에서 수십 여 번 각인시켜줬다”고 억울한 마음을 토로했다.
그나마 올해 초 임원들을 내보내기 위해 경영진과 인사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A가 맡은 부서는 당시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 3개월 정도 더 근무할 수 있었다.
그는 “급한 업무 처리를 위해 스트레스는 덜 받았는데 다른 부서 임원들은 아예 후배들조차 쳐다보기 민망할 정도로 인격모독을 서슴지 않았다고 들었다”라며 “결국 이 과정에서 상급자 노조를 만들게 된 것이죠. 노조가 생겨나면서 경영진들의 태도가 어느 정도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노조가 생겨나면서 곧바로 희망퇴직을 시행했습니다. 15~20년차 직원들은 약 3~4억원 미만의 퇴직금을 받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10명중 2명만 제외하고 모두 새로운 일자리를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
A 씨는 “임원들 중 연락을 자주하는 사람들은 10여명이 있는데 2명만 제외하고 모두 쉬고 있다”면서 “고학력에 일할 수 있는 여건도 충분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어 퇴직금 4억여원 가운데 부당하게 2000여만원을 공제한 것에 대해서도 모두 털어놨다.
A 씨는 “2007년 회사에서 등록금 80%를 지원한다는 조건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는데 희망퇴직을 신청할 때 인사부에서 3년을 채우지 못했으니 등록금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이에 대해 너무 부당하다고 항의했지만, 결국 등록금은 제외하고 퇴직금을 지급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유를 들어보니, 석사과정을 마치고 3년 안에 그만두거나 자의적으로 나가면 모든 지원금을 되돌려줘야 하는데 희망퇴직이 자의적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그는 “10년차 이상 된 임원들이면 HSBC은행에서 누구도 자의적으로 나온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내부에서 강제로 나가게끔 만들고 희망퇴직을 신청했으니 자의적으로 나갔다고 하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느냐”고 항변했다.
아울러 “현재 변호사와 이 내용을 가지고 협의 중이다. 20년 이상 근무한 곳이 이제는 적이 되어 싸워야 하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고 고개를 숙였다.
한편 이에 대해 HSBC은행 관계자는 “희망퇴직은 100% 임ㆍ직원들이 원해서 시행한 것이다. 어떠한 강제성은 없었다”며 “이 외에 더 이상이 말은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또 석사지원금에 대해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3년 이상 회사에 다녀야 하는데 본인이 퇴직을 원해 희망퇴직으로 나가게 된 것”이라며 “내부규정에 의한 정당한 회수”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