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시황 부진에 투자 계획 잇따라 보류

입력 2009-08-11 17:35 수정 2009-08-1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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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칼덱스에 이어 SK에너지 HCC설비 투자 5년 연기

국내 정유업체들이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시설 투자에 나섰으나 최근 급격한 석유사업 시황 부진 등으로 인해 사업시기 조정에 나서고 있다.

대형 시설투자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신용 리스크' 악화 등 자칫 자승자박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에너지는 인천 CLX에서 추진하고 있는 1조5200억원 규모의 중질유분해시설(HCC) 설비 투자 완료 시점을 기존 2011년 6월에서 2016년 6월로 5년 연기했다.

'지상유전'이라 불리는 고도화 시설은 저가의 중질유인 벙커C유를 휘발유나 경유 등 부가가치가 높은 경질유로 변환시키는 고도화 설비다. 통상 원유를 정제하면 벙커C유가 차지하는 물량이 40%를 상회해 고도화 설비를 거치면 정유사는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SK에너지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인해 경유가격이 낮아 고도화시설 가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이익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여 투자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며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대한 투자의 우선 순위를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SK에너지는 시장 상황이 예상보다 빨리 회복되면 투자를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SK에너지는 당초 투자하기로 한 1조5200억원 중 작년에 971억원을 투자했다. 나머지 1조4229억원은 2011년까지 분할 투자한다는 계획이었다.

따라서 이번 SK에너지의 고도화 시설 완공 연기는 현재 정유업계가 처한 상황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고도화 설비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지며 국내 정유 4사도 고도화 비율을 높이는 데 주력해 왔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도 올해 초부터 1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고 2011~2012년 준공을 목표로 고도화시설 공사를 진행해 왔다.

GS칼텍스는 여수공장에 3조원 규모의 제3고도화시설 공사를 2012년 완공 목표로 진행 중이다. 이 시설은 1일 6만배럴의 감압잔사유 수소첨가 분해 탈황시설(VR HCR)과 5만3000배럴의 감압가스오일 유동상 촉매분해시설(VGO FCC) 등 11만3000배럴 규모의 중질유 분해 탈황시설과 수소 생산시설, 황 회수 시설, 유틸리티 시설, 저장 출하 및 부두시설 등으로 구성된다.

현대오일뱅크도 2조1000억원을 들여 제2고도화시설을 짓고 있다. 오는 2011년 7월 상업 가동을 목표로 제2 고도화 프로젝트는 일일 6만6000배럴 규모의 중질유 탈황시설(ARDS)과 일일 5만2000배럴 규모의 중질유 분해시설(RFCC) 등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작년 중순 이어진 경기 침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석유 수요가 급감한 것이 문제가 됐다.실제로 GS칼텍스는 당초 2010년 완공 목표였던 제3고도화시설 공사를 2012년까지 단계적 완공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HCR은 2010년까지 완공,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며, FCC는 2012년까지 마무리 짓기로 했다. SK에너지에 앞서 투자 계획을 조정했던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사업의 경우 2005년경 부터 단순 정제마진이 거의 '0원'에 이를 정도로 낮아지면서 정유사들이 단순히 생산시설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을 할 수 있는 대형 시설투자로 탈출구를 모색해 왔다" 면서 "하지만 지난해와 달리 치솟던 석유 가격이 내림세를 보이면서 고도화설비 증설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급감해 이같은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업계의 다른 한 관계자도 "석유제품 시황 악화로 인도·중국 등의 신증설 설비 가동 시점이 연기되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며 "정유업계 전체적으로 투자 전략을 재설정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유가 상승과 마진 악화 전망으로 인한 '신용 리스크'를 완화시켜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다는 지적이다.

SK에너지의 이번 투자 연기에 대해 조승연 LI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S&P, 무디스 및 피치사가 제기했던 과도한 차입금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대규모의 자금 투자 기한을 연장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SK에너지(AA+)는 차입금 상환 목적으로 올 들어 단 한차례 회사채를 발행했다. 4월15일 발행된 3000억원어치의 회사채중 1500억원은 만기도래한 회사채 상환에, 나머지 1500억원은 기업어음(CP) 상환에 사용했다.

차입금의 문제는 SK에너지 뿐만 아니라 다른 정유사들도 벗어날 수 없는 문제다.

GS칼텍스는 3월4일 4000억원, 5월8일 3000억원 등 올 들어서만 총 70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전액 고도화설비 프로젝트에 투입됐다. 또한 추가로 2000억~3000억원 회사채 발행을 위해 사전 수요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계획대로 진행이 된다면 GS칼텍스의 올해 회사채 발행액은 1조원을 넘게 된다.

현대오일뱅크(A)는 총 25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1월22일에는 2~3월의 원재료 구매대금을 확보하기 위해 1500억원을, 7월3일에는 만기도래하는 회사채를 차환하기 위해 1000억원을 조달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작년 대비 낮은 국제유가와 정제마진 축소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인해 정유업에 대한 시장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과도한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끌어들일 경우 자칫 신용리스크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면서 "사업 시기조정으로 대규모 투자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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