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과 옵션 등과 같은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거래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증권거래세법 일부 개정안'이 전날(25일) 정치권에서 발의된 것과 관련해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반발이 거센 모습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파생금융상품에 거래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증권거래세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후 동 개정안의 국회 통과시 당장 국내 파생시장의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일제히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부분은 늘어난 세금으로 인해 부담해야 할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아 파생거래 수요가 급감할 수 있다는 것.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전날 파생상품에 거래세를 부과하고 세율은 종목에 따라 인하하거나 영(0)세율을 적용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주가지수 선물과 옵션 등 다양한 파생상품 가운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파생상품에 거래세를 부과하고 과세표준은 선물의 경우 약정금액, 옵션의 경우 거래금액으로 정했다.
또 대통령령으로 종목에 따라 세율을 인하하거나 영세율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시 거래비용 증가로 파생상품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이 의원측 주장이다.
이 의원은 "현물시장 주식거래에는 거래세가 부과되지만 파생상품에 대해선 과세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파생상품에 거래세를 부과할 경우 조세 형평성에 기여할 수 있고 조세회피를 방지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아울러 현재 과열 양상을 띠고 있는 국내 파생상품 시장 상황을 고려시, 파생상품에 대한 거래세 부과는 투기 과열을 억제하고 시장을 안정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파생상품에 거래세를 부과하는 주된 원인은 현물과 같은 수준을 과세를 부과함으로써, 조세의 형평성을 가하는 한편, 조세회피 방지, 과열투기 억제를 도모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금융감독당국과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라며 현재 국내 파생시장의 주요 투자 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법 개정안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 업계 반응은 "몰라도 너무 모른다..파생시장 위축 불가피"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 법안 추진에 대한 시장 참가자 상당수는 현재 국내 파생시장이 지수 인덱스 차익거래 및 일중 스캘핑에 편중되어 있다는 기본적인 시장 특징조차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고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극히 낮은 수준의 수익과 헤지 목적으로 꾸준히 누적해가는 투자 패턴이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 거래 회전율 감소를 불러오는 거래세 부과 법안은 파생상품 시장 발전을 가로막는 악법이라는 것.
한 파생 담당 애널리스트는 "이번 거래세 법안이 현실화되면 무엇보다 지수 인덱스 차익거래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치명적일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인덱스 차익 거래가 위축된다는 것은 관련 펀드인 인덱스펀드, 차익거래펀드의 거래 위축으로 이어진다"며 "거래 부족으로 현ㆍ선물간 이격이 확대돼 시장 전반의 유동성이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파생 애널리스트는 "단적인 예로 8월 한 달간 유가증권시장 평균 거래대금은 6조7357억원 수준이며 평균 프로그램 매매 금액도 1조3642억원(전체 거래대금의 20%)에 달한다"며 "프로그램 매매가 증시 수급에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유동성 위축에 따른 거래대금 감소는 곧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외국인 '파생시장 이탈' 혹은 '지배력 확대'로 이어질 수도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파생시장 이탈 가능성도 주된 지적 사항 가운데 하나다. 이는 거래세 부담으로 인한 보유 포지션의 자유로운 헤지가 제약을 받기 때문.
그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활발하게 국내 금융시장에서 투자해 온 것들도 어떻게보면 지수 선물시장의 발달로 인한 원활한 헤지 수행이 가능했다는 점이 주효했다"며 "이 부분이 위축되면 현물 시장에서의 외국인의 주식투자자금도 이탈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외국인들의 자금 조달 금리가 기본적으로 국내 금융시장 참가자들보다 싸다는 점에서 거래세 부과 이후 국내 파생금융시장의 외국인 지배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모 투신사 채권 운용역의 얘기는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한 대형 투신사 채권 운용역은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 조치로 인해 거래량 위축에 따른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현물과 선물간 가격 왜곡 구간이 발생, 이를 노린 외국인 투자자금이 대량으로 유입돼 시장 지배력을 높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운용역은 "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우리 시장 참여자들보다 조달 금리가 싸다"며 "이는 차익 거래 환경이 양호하다는 얘긴데, 국내 참여자들이 거래세 부과로 인해 얻을 수 없는 차익을 외국인들은 낮은 조달 금리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파생상품에 대한 거래세 부과는 거래량 위축으로 인한 관련 분야 위축은 물론, 시장 전반의 구조적인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시장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법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금융당국도 파생거래 부과세 법안에 '불편한 심기' 드러내
기본적으로 파생시장은 기초자산의 위험을 거래하는 부수적인 시장이라는 점에서 기초자산시장과 같은 잣대로 평가하고 적용해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입장이 금융당국과 시장 참가자들의 기본적인 인식이다.
국내 파생상품시장은 장내 파생상품시장을 중심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해온 반면 장외파생상품시장은 여전히 성장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장에 불과하다.
특히, 장외파생시장의 경우 신용파생 잔액은 현재 50억달러에 불과한데 이는 미국의 0.03%(20조달러), 일본의 1.4%(3600억달러) 수준이다.
양적인 측면은 물론 질적인 측면을 보아도 선물환 등 단순 구조의 거래 비중이 높은 편이고 복잡한 파생상품은 외국 금융회사로부터 사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금융당국은 현재 파생상품시장내 주요 이슈는 장내파생시장의 활성화 만큼이나 장외파생상품 시장 규모를 키워나가고 이를 어떤 강도와 내용으로 규제할 것인지에 주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파생금융상품 모니터링 장치를 마련하고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는 등 시장 점검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음에도 조세 형평 차원의 거래세 부과가 금융시장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법안이라는 점에서 신중치 못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이 이날 파생상품 규제와 관련 '서울 국제파생상품 컨퍼런스'에 참석해 "파생상품 규제는 시장활성화를 위해 당분간 최소한의 규제에 머물러야 한다"고 언급, 금융당국의 파생상품 시장에 대한 인식을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냈다.
김 원장은 이 자리에서 "파생상품규제는 금융회사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도록 당분간 최소한의 규제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이를 위해 금융시스템이 안정되고 투자자보호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할 것이고 감독역량을 이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홍영만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도 지난주(21일) 장내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에 대한 정부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홍 국장은 당시 "원칙적으로 보면 거래세를 내는 게 맞지만 현재 금융시장 상황이 어려운 국면을 벗어난 것이 아닌 만큼 보수적으로 검토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기획재정부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장내 파생상품 거래세의 경우 의원 입법을 발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법안 자체가 통과될지도 미지수이고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어 보인다"면서도 "거래세 부과에 신중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