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과거 파생상품 투자 손실 책임을 묻고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확정하면서 금융권에 보신주의 풍토가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특히, 과거에 이뤄진 투자에 금융당국의 무거운 처벌이 내려지자 금융권 전체가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한 가운데 금융권 관계자들사이에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금융회사 수장이 투자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손실을 입었기로서니 당국이 황 회장을 금융권으로부터 아예 '퇴출' 선고를 내렸다는데, 어떤 최고경영자(CEO)가 적극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겠냐는 것.
10일 금융계에 따르면 시중 은행의 투자영업부 관계자는 물론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황 회장에 대한 징계로 KB금융은 물론 금융업계 전체가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이미 시장에 널리 알려진 대로, 금융위의 황 회장에 대한 중징계 최종 결정에 따라 '변양호 신드롬'의 금융판인 '황영기 신드롬'은 이미 시작됐다고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이 지난 2003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에 재판에 선 이후 공무원 사회에서 구조조정 총대 메기를 꺼리는 현상을 일컫는 '변양호 신드롬'처럼 말이다.
이는 금융회사 경영진 사이에 책임 회피 풍토가 만연해질 수 있다는 지적인데, 무엇보다 '황영기 신드롬'이 거세지면서 금융권 전체로 '보신주의'가 확산될 수 밖에 없다는 우려에 따른 것.
시중의 한 은행 고위 임원은 "은행 내부의 리스크관리위원회 등 의사결정 과정이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파생상품 투자로 인한 손실, 즉 결과에만 집중함으로써 전체 금융계 종사자들사이에 복지부동이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임원은 "금융당국과 시장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은행의 수익성 개선 다변화에 나서라고 주문해 업계 나름의 해외 시장 개척 등 투자은행으로의 관련 업무를 성실해 수행중"이라며 "과거 이뤄진 투자 실패 책임으로 금융업계 퇴출 결정까지 내릴 정도라면 누가 관련 업무에 나서겠냐"며 반문했다.
또 다른 은행의 부행장은 "우리 회사는 물론이고 여타 은행들도 마찬가지로 투자위험을 수반하는 해외 업무를 보류하거나 원점에서 검토하는 방안을 강구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분간 보수적인 의사 결정 수립이 불가피하다"고 답변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반응도 이와 별반 차이가 없는 모습이다. CEO는 물론 실무진도 파생상품 투자를 비롯한 투자 금융(IB) 업무를 꺼리게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투자 실패는 곧 퇴출이라는 두려움이라는 공식이 성립됐다고 전했다.
모 증권사 투자금융부 부장은 "은행권 만큼 이번 황 회장 중징계 결정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지는 않았지만 투자 금융 관련 종사자들사이에 알게 모르게 이번 결정에 유감을 표명하는 모습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결정으로 은행권 핵심 IB 인력들이 국내 금융계를 기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당장 이러한 분위기가 확산되지는 않더라도 심리적 충격이 상당했던 건 사실"이라고 귀뜸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 부실기업 인수 및 IB업무 강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에 열을 올리던 상황에서 내려진 황 회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중징계 결정으로 당분간 이 같은 분위기는 지속될 전망이다.
한편, 황 회장 중징계 건과 관련해 한 금융계 인사는 "황영기 회장의 중징계 논란의 핵심이 금융감독당국의 사후 책임 추궁이라는 일각의 비판이었던 만큼, 앞으로는 객관적인 기준이나 잣대를 명확히 설정하고 시장과 당국간 합리적인 기준안을 마련, 이를 기반으로 한 상호 정보 교환이 이뤄져야 또 다른 불행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