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이 그동안 시중 금융기관들의 차세대 수익원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퇴직연금 시장내 불공정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짐에 따라 불공정 경쟁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결국 규제의 칼을 빼 들었다.
1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금융사들이 앞으로 기업에 대출을 해주는 대가로 퇴직연금 가입을 종용하는 이른바 '꺾기(불건전 가입권유 행위)' 행위에 나설 경우 해당 기관에 제재 조치를 내릴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은 이러한 내용의 보험업감독업무 시행세칙 개정안을 마련하고 내달 16일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현재 금융권 퇴직연금 유치 경쟁에 꺾기식 영업 행위가 만연돼 있다는 당국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회사가 기업에 퇴직연금이나 퇴직보험 가입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거나 대출을 대가로 가입을 강요할 경우 '구속성 보험계약 행위'로 간주해 과태료나 과징금 부과, 기관경고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금융권 퇴직연금 불공정 영업행위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판단돼 이 같은 규제안을 마련했다"며 "금융회사가 앞으로 기업들에게 대출을 대가로 퇴직연금 가입을 강요하는 꺾기 영업에 나서게 되면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며 전했다.
이 관계자는 "노후 생활의 안정된 보장을 위해 도입된 퇴직연금이 금융권의 도를 넘은 경쟁으로 서비스의 질과 컨설팅 그리고 적절한 상품 개발 등은 뒤로 밀린 채 갈수록 외형 경쟁에 치닫고 있다"며 "이로 인한 비용부담은 결국 퇴직연금 가입자들에게 전가될 수 있어 당국이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이 결국 이번에 내놓은 퇴직연금 꺾기 영업과 관련된 처벌 규정은 지금까지 퇴직연금이나 퇴직보험은 꺾기 처벌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는 점과 일부 금융기관의 우월적 시장 지배력을 이용한 불공정 경쟁에 기인한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통계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말 현재 퇴직연금적립금 8조6837억원 가운데 은행권 적립금은 4조4825억원으로 전제 적립금의 51.5%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 은행권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8월 한 달간 신규로 체결된 1040건의 퇴직연금계약 가운데 900건이 은행과 체결될 정도로 시장 쏠림 현상이 심화된 것으로 확인됐고 은행들이 여신기능을 이용, 퇴직연금 가입을 사실상 강요했다는 제보가 끊이지 않았다.
보험연구원 역시 이달 초 퇴직연금 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은행권의 '꺾기' 행위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퇴직보험을 퇴직연금으로 바꾼 사업자 전환 기업의 약 21.4%가 대출만기 연장, 신규대출 허용, 만기도래 회사채 연장 등의 불건전 가입권유 행위를 경험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은행권은 이에 대출 등을 미끼로 기업 퇴직연금 가입을 권유하는 꺾기에 나서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퇴직연금은 은행이 대출해줄 당시, 일정 금액을 강제로 예금토록 하는 구속성예금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만큼 꺾기가 발생할 수 없다며 은행연합회 성명서를 통해 반박하는 등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는 양상을 보였다.
한 시중 금융권 인사는 "당국의 이번 결정은 결국 금융사들이 퇴직연금서비스 역량만으로 경쟁하라는 취지가 아니겠냐"며 "일부 금융기관 퇴직연금 꺾기 영업으로 촉발된 불건전 영업행위와 관련해 당국이 조만간 실태 점검과 관련 규정 개정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금감원은 오는 11월에 시중 금융권을 대상으로 퇴직연금 판매 실태를 우선 점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