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시장은 이른바 '끗발'보다는 성과가 더 중요하다. 경쟁사에서 장관 출신을 영입했다고 내가 신경 쓸일이 뭐가 있는가."
지난 29일 SK텔레콤 정만원 사장이 기자간담회에서 'KT 이석채 회장이 고객 시장을 잡기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경쟁사 얘기는 가급적 자제하겠지만, 기본적으로 KT가 추진하는 계획은 뻔히 보이는 수"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이날 참석한 기자들은 최근 여러가지 통신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황에 정 사장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었다. 질문에 있지도 않은 '장관 출신 회사대표'를 언급한 자체가 SK텔레콤 매출과 비전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특히 "경쟁사에 정통부 장관 출신이 대표이사로 온다면서 나한테는 과장 출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며 "과장직함을 떠난지가 십 수년 전인데 경쟁사 대표 두 분이 장관출신인 것이 나랑 뭔 상관이냐”고 따져 물었다.
한발 더 나가 "공직사회는 최종 직함보다 시작 기수로 따지는게 원칙"이라며 "내 동기들이 노준형, 유영환 장관 등 차관만 9명이고 경제 전반으로 따지면 손으로 꼽을 수도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기자회견장을 폭소로 몰아넣은 이 한마디는 농담처럼 보였지만, 그동안 정 사장의 행보를 볼 때 공식적인 자리에서 흘릴 수 있을만한 '말 실수'는 아니었다. 특히 이날 기자 간담회는 앞으로 SK텔레콤이 추구할 장기 비전을 내놓는 자리였다.
취임이나 통합 등 굵직한 이슈가 없는 마당에 무난한 과정이 전개되는 시점에서 기업 대표가 노골적으로 자격지심(?)을 드러내는 것부터가 가볍게 흘릴 수 없는 변수인 셈이다.
물론 정 사장이 발언한 부분은 개인적인 상황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 사장은 이왕 시작한 것, 끝을 보려고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특히 "우리가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없어서 그러는게 아니다", "KT의 사업은 국내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정책", "최시중 방송통신 위원장과 얘기를 많이 한다"는 등 의외의 발언들이 눈길을 끌었다.
통신업계에서 정 사장의 이같은 발언을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이다. 당장 내년부터 LG통신 3사 합병은 통신시장이 3강 고착화를 장기화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SK텔레콤이 IPE(생산성 증대)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기 의식을 느끼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또 하나는 경쟁사에서 앞다퉈 고위 공직 출신 대표를 영입하면서 사업 수주나 영업전선에서 밀릴 것이라는 위기 의식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이동통신 분야 업계 1위라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국내 통신 시장을 장악하지 못할 수 있는 불안감의 확산이 정 사장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정 사장이 앞서 말한 '끗발'보다 '성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같은 대목이다.
내년 통신시장에서 SK텔레콤이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전개할 지 어느 정도 윤곽은 나타났다. 그러나 정 사장이 자신하는 50.5%의 점유율과 폭 넓은 인맥으로 무장한 경쟁사의 도전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SK텔레콤이 정 사장의 자격지심을 얼마나 해소 시킬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