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들의 기부금이 갈수록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동안 제약사의 기부금중 상당부분이 병원과 학회 등에 매출 증대를 위한 대가성 리베이트로 제공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바 있고 정부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리베이트에 대한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어 이에 따른 영향이 아니냐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본지가 금융감독원 공시를 통해 거래소에 상장된 12월 결산법인 제약사들의 올 3분기까지 기부금 누적액을 조사한 결과,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약 15%정도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분석결과 올해 3분기까지 기부금이 가장 많은 회사는 한독약품으로 모두 28억 8천만원을 지출했다. 이어 동아제약(23억8천만원), 한미약품(20억8천만원) 등의 순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기부금 비용 감소율이 가장 큰 회사는 한올제약으로 약 89%정도 줄었다. 이어 유한양행(-59%), 종근당(-46.7%), 삼진제약(-42.6%)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특히 조사대상 19개사 가운데 한미약품과 중외제약, 지난해 5억원 이하의 비교적 소액의 기부금을 납부한 3개사를 제외하고는 모든 제약사들이 올해 들어 기부금 규모를 상당폭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원인에 대해 관련업계는 정부가 최근 리베이트 규제를 위해 시행하고 있는 여러 제도들이 제약사를 압박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현재 복지부는 지난 8월부터 리베이트 제공시 약가를 강제로 인하시키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최근에는 받는 사람까지 처벌한다는 ‘쌍벌죄’ 등 신규제도 도입 여부를 놓고 막바지 의견을 조율중에 있다.
여기에 지난 2월 검사들로 구성된 식약청 위해사범중앙조사단이 출범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공정거래위원회도 제약사 리베이트에 대해 강도 높은 실사를 벌인다고 여러차례 공언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약사의 기부금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의료봉사 물품지원 등 순수한 의도로 제공되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병원이나 학회 등에 흘러들어간다”며 “이 경우 자연스레 대가성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하고 실제로도 상당수 병원들이 제약사에 먼저 기부금을 제안하는 관행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경태 제약협회 상근부회장도 최근 한 세미나에서 "대형 대학병원에서 발전기금 명목으로 회원사에 기둥뿌리 하나씩 세워달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같은 제약사의 기부금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드세지자 최근에는 제약사 기부금을 받지 않겠다는 대형병원들도 등장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이 올초 이같은 의지를 천명한 바 있고 이달초 윤리강령을 선포한 연세의료원도 지난해 말 의료원 고위 관계자가 제약사들에게 기부금 등 의약품 사용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정적인 의지표명보다는 투명한 기부금 문화 확산을 위한 의식전환과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상위 제약사 관계자는 “제약사는 기부금을 통해 어떠한 대가를 바란다는 생각을 버리고 기부금을 통해 이미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다는 마음으로 선행문화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며 “일부 제약사의 기부금이 당초 취지를 빗겨나가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며 조만간 새 대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기부금과 관련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8일 제약협회와 다국적제약산업협회(KRPIA)로부터 의견을 받아 공정경쟁규약 개정안을 승인키로 확정, 내년 4월을 시행목표로 앞으로 3개월간 제도정비를 하기로 했다.
새로운 개정안에 따르면 제약회사들은 앞으로는 제약협회나 재단 등의 단체를 주체로 한 비지정기탁 형식으로 학술지원 및 기부금에 대한 사전심의를 거쳐야 하며 대가성 여부를 판정받아야 한다. 현재 학회 기부금은 개별 제약사가 특정 학회를 지정해 지원하는 ‘제3자 지정기탁제’ 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