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의 아이 러브 스포츠]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입력 2010-01-27 08:42 수정 2010-01-2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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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진다"…화려한 이력보다 빛난 '축구인'

"건강 유지를 위해서나 여가의 즐거운 시간을 위해 축구를 더 많이 사랑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FIFA 부회장, 현대중공업 대주주)이 지난 2002년 7월 우리나라 축구국가대표팀이 한일월드컵에서 '월드컵 4강 신화'를 쏘아 올린 직후 이뤄진 한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축구국가대표팀이 이탈리아를 꺽고 4강행을 확정지은 후 당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당시 6월 한 달 동안 700만명의 길거리 응원을 포함해 4700만명의 국민들과 570만명의 해외 동포들이 일치 단결해 '대~한민국'을 외치며 만들어낸 감동을 떠올리면,월드컵 개최의 일등공신으로서는 '참 소박한' 표현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 같은 소박함이 축구인 정몽준의 진정성을 도드라지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몽준 명예회장의 다양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그는 여전히 '축구인=정몽준'으로 각인돼 있다.

정몽준 명예회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그는 1982년 서른 한 살의 나이에 현재 자산규모 9위(공기업 제외)의 기업이자 세계 최대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의 사장이 됐고, 5년 뒤인 1987년부터 3년 동안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을 역임했다.

또 1993년에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선임돼 2002년 월드컵 유치에 뛰어 들었고, 이듬해인 1994년부터 현재까지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직을 수행중이다.

정치인으로서도 그는 승승장구 중이다. 1988년부터 울산 동구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내리 6선을 한 국회의원이자 현재는 여당 당대표직을 맡고 있다. 한 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반으로 대통령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이력에도 정몽준 명예회장이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 국민들에게 더 다가설 수 있는 것은 역시 2002년 한일월드컵의 기적 같은 유치와 4강 신화의 감동이 그만큼 벅찼기 때문이다.

과거 혹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정몽준 명예회장의 미래 행보도 축구와는 떼려야 뗄 수 없게 된 것도 한 판의 축제였던 한일월드컵의 기억이 대다수 국민의 DNA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2002년에 나온 그의 에세이집의 제목은‘꿈은 이루어진다’였다. 앞으로도 그의 꿈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축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 “회장님 고생했습니다”

2002년 6월29일 한국 축구국가대표 선수들은 터키와의 3, 4위전을 끝내고 나서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었던 정몽준 명예회장을 운동장 높이 들어 올리며‘헹가래’를 쳤다. 월드컵 4강 신화의 기쁨을 함께 나눈 것이기도 하지만 한일공동 월드컵의 유치를 성사시킨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담은 헹가래였다.

정 회장이 2002년 월드컵 유치의사를 공식 표명한 것은 그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1993년 2월이었다. 정 회장은 같은 해 6월에 FIFA에 2002년 월드컵유치 의사를 공식 전달했다. 이때는 이미 일본이 1991년에 월드컵 개최 의사를 표명하고 유치작업을 한참 진행하던 시점이다.

특히 2002년 월드컵은 21세기 첫 대회이자 구미 이외의 지역에서 처음 열리는 대회란 점에서 일본은 개최권을 확보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2년이나 늦게 뛰어든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을 유치한다는 것은 당시 한국인들에겐 '희망'사항에 가까웠다.

정몽준 명예회장 역시“2002 월드컵 유치를 시작할 때 우리는 일본보다 유치 활동이 훨씬 늦었다”면서“당시 축구 시설이나 기술, 열기 등 모든 면에서 월드컵을 개최할 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본선 출전국가들의 조주첨에 참석한 정몽준 명예회장(가운데).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하지만 정몽준 명예회장은 FIFA 집행위원이라는 명함을 걸고 5대양 6대주를 순회하며 표밭을 공략했다. 정 명예회장은 “할 수 있다”고 믿었고, 결과는 1996년 5월31일 한일공동개최 확정이었다.

공동개최 확정 직후 정 명예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어렵다는 생각은 했지만 안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면서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공감할 수 있는 명분과 목적이 분명했으나 일본은 보다 상업적이었다”고 평가해 공동개최가 가능했던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의 월드컵 유치에는 현대그룹 해외 지사원들도 맹활약을 했다. 현대는 FIFA 집행위원국에 주재하는 상사원들 가운데 집행위원 전담맨을 지정해 집행위원의 일정과 취미생활은 물론 가계와 혈통까지 파악하고 이 같은 정보를 대한축구협회에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명예회장이 2002년 성공적인 월드컵을 개최한 이후 한 인터뷰에서“지난 10년간 오로지 월드컵만을 위해 달려왔다”면서“아버님(고 정주영 회장)과 현대그룹에서 많이 도와 주셨다”고 말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또 정 명예회장의 부인인 김영명씨도‘미스 스마일 월드컵’이라는 애칭을 얻을 정도로 한일월드컵 유치의 숨은 일꾼이었다. 외교관인 부친을 닮아 사교성이 뛰어난 김영명씨는 2002년 월드컵 유치과정에서 FIFA 집행위원 부인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행사장에서 미소와 유창한 영어로 분위기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향해

▲2009년 3월 남아공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예선경기 중 이라크와의 결전을 앞두고 정몽준 명예회장(왼쪽)이 허정무 대표팀 감독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지난해 1월 정몽준 명예회장은 16년 동안 이끌어 왔던 대한축구협회 회장직을 물러났다. 그렇다고 그의 축구사랑이 멈춘 것은 아니다.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감동을 한국 축구의 뿌리를 다지는데 거름으로 썼다.

우선 2002월드컵 잉여금 650억원과 지자체 투자비 3500여억원 등 모두 4150여억원이 투입되고 있는 축구센터와 축구파크 공사를 지난해 대부분 마무리했다.

2008년 11월 천안 축구센터(월드컵 잉여금 125억원, 지자체 투자비 1150억원)를 완공된 데 이어 목포 축구센터(월드컵 잉여금 125억원, 지자체 투자비 850억원)도 지난해 5월, 창원 축구센터(월드컵 잉여금 125억원, 지자체 투자비 522억원)는 12월에 완공했다. 또 전국 23곳에 조성한 축구파크는 2006년 울주 축구파크의 완공을 시작으로 지난해 공사를 마무리했다.

16년 동안의 정 명예회장의 대한축구협회장 재임기간에서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 개최가 정점이었다면 이후 그의 행보는 국내 축구 인프라 구축을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축구사랑의 길에서 벗어남 없이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축구에 대한 분명한 역사의식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해 대한축구협회장으로서는 마지막 신년인사를 통해“일제시대를 비롯해 우리가 어려웠던 시기에 국민들에게 기쁨을 준 운동이 바로 축구”라면서“축구는 삶의 활력소로 올 한해 축구를 즐기며, 우리의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밝힌바 있다.

이어 그는“(금융위기 이후) 우리의 생활이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축구는 계속된다”며“올 한 해에도 큼지막한 경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해야 할 일도 많다”고 부연했다.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된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전을 염두에 둔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남아공 월드컵 예선전을 통과해 사상 처음으로 7번 연속 월드컵에 진출하는 영예를 안았다. 지금까지 월드컵 본선 7연속 진출을 달성한 나라는 우리를 비롯해 브라질, 이탈리아, 독일,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 세계에서 여섯 나라 밖에 없다.

올해는 다시 월드컵의 해이다. 6월부터 남아공과 전세계를 뜨겁게 달굴 2010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들이 2002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정몽준 명예회장이 신년사에서 당부한대로 국민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축구를 더욱 사랑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 명예회장의 이 말은 대다수 국민들과 재외교포들이 올해도 다시 한 번 한마음으로‘대~한민국’을 외친다면 승부를 떠나 한민족의‘한판의 멋진 축제’를 즐길 준비가 됐지 않느냐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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