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100년만에 급변한 車산업-'디트로이트의 종말' <1>

입력 2010-03-01 20:17 수정 2010-03-1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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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경제 부흥의 중심 '미국 빅3', 몸집 불리기로 위기 자초

▲포드의 수장 '윌리엄 포드 주니어'는 지난 2002년 5개 공장의 폐쇄와 2만3000여 명의 직원해고를 통보했다. 미국 빅3 침몰의 시작이었다
2002년 포드의 본거지인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에서 당시 포드의 수장이었던 '윌리엄 클레이 포드 주니어(William Clay Ford Jr)'가 우울한 어조로 기자들 앞에 나섰다.

포드가 마침내 '9년만에 적자'를 기록했음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부득이 직원 2만3000여 명을 해고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아가 포드의 5개 공장을 폐쇄할 예정이며, 만드는 족족 적자를 내는 5개의 차종도 없앨 계획을 밝혔다. 마침내 미국 자동차산업이 하나 둘 재앙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때였다.

◆시장 지배자의 자만이 디트로이트 침몰 원인

미국 경제부흥을 이끌어 왔던 '디트로이트의 자동차산업'은 1980년대 말부터 이미 침체기에 접어 들었다.

이른바 빅3로 불리는 GM과 포드, 크라이슬러가 소비자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외면한채 시장 지배자로서의 자만에 빠지면서 예고된 결과였다.

100여년 전 대량 생산을 도입하면서 귀족의 취미였던 자동차를 서민의 발로 바꾸었던 이들은 20세기 자동차 산업의 초석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영광은 안타깝게도 21세기로 이어지지 않았다.

▲20세기 미국 경제부흥의 중심이었던 빅3는 상품성 개선보다 M&A를 통한 몸집 부풀리기에 치중했다. 디트로이트에 자리한 GM본사

'뉴욕타임스'에서 항공과 자동차산업을 담당했던 '미쉐린 메이너드'기자는 2004년 그의 저서 '디트로이트의 종말(The End of Detroit-조선일보 최원석 역)'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과거, 가장 거대하고 수익성이 높으며 영화로웠던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이제 더 이상 미국 산업의 리더도 등대도 아니다. 지난 100년간 미국산업을 지배해 온 디트로이트는 이제 그들의 영광에 종지부를 찍었다."

◆상품성 외면한채 전략적 M&A에만 치중

다임러 벤츠와 크라이슬러의 합병 초기인 1998년 크라이슬러가 실패를 거듭하고 있을 무렵, GM은 모든 미국인이 자신들이 만든 차를 무조건 좋아할 것이라는 자만에 빠져 픽업트럭 시장에만 몰두했다.

비슷한 시기에 포드는 상품성을 키우기보다 재규어와 랜드로버, 에스턴마틴 등 유럽의 고급차 브랜드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동시에 품질보다 덩치 키우기에만 전념하기 시작했다.

▲크라이슬러 역시 벤츠와의 합병효과를 누리지 못했다. SLK(사진 위)를 바탕으로 크로스파이어(아래)를 개발했지만 시장반응은 냉담했다
이처럼 GM과 포드, 크라이슬러의 최우선 목표는 단순히 좋은 차를 개발하기 보다 전략적 제휴를 통해 회사의 몸집을 키우는데 열정했다.

좋은 차 한 대를 개발해 회사의 수익을 키우는 것보다 M&A를 통해 일시에 몸집을 부풀리는 것이 더 빠르고 안정화된 방법이라고 오판한 것이다.

◆픽업트럭 몰두하면서 패밀리 세단 위기에 빠져

당시 인기 있는 픽업트럭 시장은 GM의 독차지였다. 이 차들은 크기를 막론하고 생산하는 즉시 팔려나가 GM을 배불려주었다. 연간 1000만대 이상이 팔리는 자동차 시장에서 GM은 모델별로 수십만 대의 트럭을 팔아 치웠다.

빅3 가운데 하나인 포드가 이를 두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품 기획력을 지녔던 포드는 연구개발부서의 최고 브레인을 모두 픽업 개발에 투입했다.

자연스레 미국 패밀리세단의 교과서 격이었던 토러스에 대한 비중이 줄어 들기 시작했다. 포드는 토러스의 성공에 안주했고,포드의 몰락도 여기에서 시작한다.

그룹 최고의 브레인들이 트럭 개발에 몰두하는 동안 토러스는 시장에서 급격하게 외면받기 시작한다. 엉성한 조립품질과 감성, 이해할 수 없는 디자인 등으로 토러스는 추락하게 된다.

일본과 한국 메이커는 이 시기를 틈타 감성 품질을 개선하고 내구성을 인정받으며 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갔다.

▲포드가 마진 좋은 픽업트럭에 그룹 브레인을 모두 투입하는 동안 대표모델 토러스는 시장에서 외면 받기 시작했다
당시 혼다는 어코드를, 토요타는 캠리를 앞세워 미국시장에 진출했고, 한국의 현대차는 캐나다 브로몽에 공장을 세우고 초기 쏘나타(Y2) 2.4를 미국에 선보였을 시기였다.

◆ 20년전으로 후퇴한 美 빅3

결국 포드는 황금알을 낳던 토러스가 엄청난 재고 부담으로 되돌아 오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수요는 없고 공급이 넘치자 이는 '생산라인 가동중단'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 왔다.

이런 상황이 빈번해지자 포드는 패신저카 시장을 향한 공격적이고 장기적인 전략 대신 시급한 자구책을 세우기 급급했다.

그러나 그들이 세웠다는 자구책은 또 하나의 안타까움을 낳는다.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가 떨어지자 렌터카 회사를 상대로 마케팅을 펼친 것이다.

그들을 상대로 무이자, 할인 판매, 거치 상환 등 동원 가능한 모든 금융정책을 앞세워 토러스를 공장 밖으로 밀어냈다.

결국 적자를 이어오던 포드는 지난 2006년 대대적인 생산 감축을 선언한다. 늘어가는 재고를 쌓아둘 공간을 떠나 차는 만들지만 팔리지 않는 최악의 사태에 접어 들었다. 결국 포드는 생산규모 면에서 1980년대 초로 후퇴하고 만다.

▲GM과 포드는 패밀리세단을 외면한채 픽업트럭 시장에만 주력했다
◆영원한 승자 없는 자동차 전쟁

비슷한 시기에 GM 역시 트럭시장에 안주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자 중국에 건너 갔지만 크고 기름 퍼마시는 미국차를 만들던 GM은 유력한 신흥시장 중국과 인도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야심차게 계획하고 큰 투자를 결심했지만 결국 GM의 아시아 신흥시장의 진출은 현지화에 실패의 길로 접어 들었다. 자동차 산업은 광범위한 관련 산업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종합산업으로 가장 중요한 제조산업으로 꼽을 수 있다.

또한 한 나라의 경제력과 기술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주도적인 산업중의 하나다.

미국의 경제부흥을 이끌어 왔던 자동차산업의 메카인 디트로이트의 종말은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치열한 자동차 전쟁에서 우리 자동차 산업에 중요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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