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신노사 문화] 52개 노조 '희망연대' 변화 모색 <중>

입력 2010-03-1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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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한 만큼 노사관계도 변화 요구... 쌍용차 사태 반면교사로 삼아야

지난해 3월 민주노총을 탈퇴한 영진약품의 홍승고 노조위원장은 자칭 회사내 최고 세일즈맨이다.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영업사원들과 판촉 문구가 적힌 하얀띠를 두르고 영업활동에 나선다. 약국, 병원 등 가리지 않는다.

회사도 노조의 변신에 고무돼 구조조정 대신 영업실적에 따른 성과급을 지급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홍 위원장은 "이런 게 진정 노조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노사관계의 흐름은 미국·독일·일본 등 선진국 기업들과 같이 상호협력과 타협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른바 신노사 문화를 가치로 내건 노사관계의 선진화다.

이 같은 흐름의 중심에 있는 새희망 노동연대(희망연대)는 지난 4일 현대중공업, KT, 서울메트로, 영진약품, 현대미포조선 등 42개 노조에 12만여명의 조합원으로 출범한 후 4일만에 10개 노조가 추가로 가입했다.

내년 7월부터 시행 예정인 복수노조 허용이 시작된다면 가입 노조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희망연대의 공동대표인 오종쇄 대표가 위원장으로 있는 현대중공업 노조는 이같은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노사 합의로 근로자 전환 배치를 결정했다. 현대중공업 노조측은 "회사와 긴밀한 협력 속에 일감이 부족한 조선 부문 인력을 5개 사업부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자리 나누기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게 그 이유다.

노조측는 "노동자는 기업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기업은 노동자를 한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먼저 손을 내밀고 감싸 안아 힘을 합해야 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파업철'이라는 오명을 들어왔던 서울메트로의 변화도 눈부시다. 1981년 회사설립 이래 총파업 10회, 태업 2회, 노동쟁의행위 27회 등을 기록했고 직원들의 근무중 취침, 음주 등 후진적 문화로 인해 줄곧 적자를 기록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08년 11월 임단협에서 혁신의 필요성을 인식한 노사간 공감대가 형성됐고 지난해 2월엔 노사공동 나눔경영 선언 등 신노사 문화가 정립됐다. 이를 통해 같은 해 9월 노사문화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통신회사 KT도 신노사 문화에 앞장서고 있는 기업이다. 이 회사는 지난 5일 기업가치 창출 주도 및 항구적 노사평화 유지, 고용안정 노력 및 노사공동 상생프로그램 시행 등의 내용을 담은‘올레 KT 창조적 신노사문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석채 KT 회장은 "노조에서 진행하는 화합과 나눔의 'HOST 운동'에 무한한 지지를 보내며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KT는 지난해 말 2003년(5500명) 이후 최대 규모인 3000여명의 특별 명예퇴직 절차를 진행한 바 있다. 중요한 사실은 명퇴를 제안한 것이 노조였다는 점이다. 이같은 일은 회사 설립 이후 처음이었다.

이는 KT가 지난해 7월 민주노총을 탈퇴한 이후 추구한 신노사문화의 일환이었다. KT노조는 홈페이지를 통해 "통신시장의 급변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조합원들의 명퇴 실시 요구를 받아들여 회사측에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현대미포조선 노조는 지난해 임금 인상안을 회사에 위임하며 13년 연속 무분규 노사협상을 이뤄냈다. 당시 전체 조합원 2775명을 상대로 한 임금인상안 회사 위임 찬반투표에서81.9%(2201명)의 찬성표를 얻었다.

이 회사의 역대 임단협 잠정합의안 찬성률(2006년 52%, 2007년 68%, 2008년 58.8%)에 비해 상당히 높은 찬성률이었다.인천지하철노조는 지난해 4월 민주노총을 탈퇴한 이후 회사의 사업영역 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이성희 위원장과 노조 간부들이 수개월 간 시 관계자와 사업권자 등을 만나며 공을 들인 덕에 결국 김포와 의정부 경전철 운영권을 따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2010년부터 10년간 총 950억원의 추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희망연대 가입 노조의 이같은 신노사문화 움직임 속에 지난 10일 창립 64주년을 맞이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창립 64주년 기념식에서 "조합원의 권익 증진과 노동자 대중의 권리 확대에 힘 쏟고, 대외적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받는 노동운동을 해나가겠다"며 "노동운동을 통해 한국사회의 재도약과 사회통합을 위해 책임 있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통합을 이루겠다는 신노사문회의 가치를 공표한 것이다.

▲LG전자가 10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대표이사 남용 부회장(사진 오른쪽), 박준수(朴俊守) 노동조합위원장(사진 왼쪽) 등 노경(勞經)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2010년 임단협을 가졌다. 이날 노동조합은 올해 임금인상을 회사 측에 전격 위임하기로 했다. 노동조합 측은 올해 LG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틀을 더욱 확고히 하고 미래성장의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해 이같이 결정했다.
실제로 한국노총에 소속돼 있는 LG전자 노조는 올해 임금인상을 회사측에 전격 위임하는데 합의했다. 이로써 1990년 이후 21년 연속 무분규 타결도 이어갔다.

박준수 노동조합 위원장은“국가경제, 회사, 조합원들을 다 함께 생각했고, 상생의 의미를 새기면서 임단협에 임했다”며“회사가 조합원들의 노고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고, 조합원들이 바라는 것들을 회사에서 보답해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임금인상 위임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남용 LG전자 부회장도 “노동조합의 든든한 지원으로 회사 경쟁력이 더욱 높아져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며 “노경화합의 힘을 바탕으로 세계최고 혁신기업으로 성장하게 되면 조합원들의 위상강화는 물론 경제 살리기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선포한 USR(Union Social Responsibility) 헌장을 선포하기도 했다. 헌장은 대기업 노조로서 투명하고 윤리적인 노조활동을 기반으로 조합원들의 권익을 신장하고, 경제, 사회, 환경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LG전자 노동조합의 미래 지향적 활동을 강조했다.

이같은 신노사 문화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한국 노사관계의 변화에서 먼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노동경제학회장)은 "한국 노사관계는 1970년대의 사용자와 정부 중심의 일방적인 노사관계였던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 후반엔 대립적 관계로 변모한 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며 "이제 새로운 노사관계를 모색해야할 때가 왔다"고 최근 변화의 흐름에 대해 설명했다.

쌍용자동차 사태를 봐도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의 필요성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쌍용차 노조는 구조조정 방안을 놓고 사측과 맞서며 직장폐쇄와 파업, 공장 점거 투쟁을 벌이다 77일만에 자진 해산했다.

결국 기업 이미지 추락, 소비자 신뢰 실추, 경영난 가중 등의 상처만 남겼다. 노조위원장도 뒤늦게 후회의 내용을 담은 편지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다.

최근 금호타이어 파업도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워크아웃 상태에 있는 기업의 노조는 구조조정에 협조해야 기업 회생이 가능하다는 이유다.

오종쇄 희망연대 공동대표(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은 “기존 노동단체들은 조합원을 섬기고 국민에게 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지를 받지 못했다”며 “우리는 조합원과 국민을 섬기는 등 노동운동의 질적 변화를 이뤄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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