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미분양, 중견건설사 목줄 죈다

입력 2010-03-22 09:47 수정 2010-03-2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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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미분양속출→유동성 위기 ‘악순환’ ...대책없는 게 가장 큰 문제

현재 부동산 시장은 서울과 수도권 시장에서 재개발·재건축, 신도시 분양을 막론하고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3월 중순에 접어들고 있지만 회복 기미는 보이지 않고 불확실성만 높아져 가고 있는 형국이다.

서울에서는 재건축 가격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은마아파트의 안전진단 통과와 개포지구 정비계획 가이드라인 발표 등 굵직한 호재에도 불구하고 연일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주택 매도세가 늘어나고 있지만 매수자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어 매물만 쌓여가고 있는 실정이다.

공인중개업자들은 부동산 시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인 향후 아파트값 전망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닥터아파트가 전국 250개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매주 실시하고 있는 주택시장지수는 71.7을 기록하며 3월 내내 100 아래에 머물러 있다.

최근 들어 거래량지수, 매물량지수, 가격전망지수의 하락폭이 커지고 있고 가격전망지수 마저 100선이 붕괴되면서 주택시장지수의 하락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매수세가 사라지고 소강 상태가 이어지자 호가를 낮추는 매도자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성북구 길음동 집터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중대형 아파트의 경우 시세보다 저렴한 매물도 많다. 그러나 매수세가 없어 거래가 멈춰있다”며 “하반기에 길음뉴타운 내 신규 입주물량이 쏟아질 예정이어서 매물적체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관악구 봉천동 베스트공인 소장은 “일부 급한 매도자들이 1000만원 가량 가격을 낮춰 매물을 내놓고 있지만 거래가 어렵다”며 “매수 희망자들은 아파트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상황을 지켜보자는 관망세가 짙다”고 말했다.

◆ 시장 악화 원인은

부동산 시장이 다시 침체 국면으로 접어든 것은 정부의 금융규제 강화와 불황으로 인한 주택구매수요 감소, 정부가 내놓은 보금자리주택 등 값싼 아파트 분양 등으로 압축된다.

우선 작년 9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투기지역인 강남3구에서 수도권 전지역으로 확대시킨 것이 부동산 침체를 하락시키는 단초를 제공했다. 수도권 주택 수요자들의 입장에서 소득 대비 일정 수준 이하로만 대출이 나오기 때문에 구매력이 급격히 위축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DTI는 투기지역에서는 40%, 투기지역을 제외한 서울과 인천경기지역에서는 각각 50%와 60%가 적용되고 있다.

실제로 금융권 자료를 살펴보면 DTI 규제를 확대한 작년 9월부터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매월 1조원 가량이 줄어들었고 올 1월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6000억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특히, 정부가 서민을 위해 내놓은 값싼 아파트인 보금자리주택 사전청약과 장기전세주택인 시프트 등의 공급으로 인해 민간 분양 시장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업계에서 올 초 내놓은 3월에 신규로 분양할 예정인 아파트는 1만7000여 가구로 작년 동기대비 2배가량으로 집계됐었다. 하지만 위례 보금자리주택의 사전예약이 실시되면서 건설사들이 내놓은 신규분양 물량 대부분이 자취를 감췄다.

닥터아파트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3월 현재 민간건설사의 분양실적은 20%를 갓 넘을 정도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실제로 일반 분양 기준으로 이달에 예정됐던 아파트 가운데 성동구 옥수동 조합아파트 금호어울림 54가구, 김포 한강신도시 Ab-블록 일신휴먼빌 803가구, 수원시 율전동 동문굿모닝힐 699가구, 인천 영종하늘도시 A59블록 성우오스타 331가구 등은 분양 일정이 모두 4월 이후로 연기됐다.

4월 분양예정물량 역시 지난 2007년 3만8000여 가구가 공급된 이래 사상 최대 물량인 3만여 가구가 신규 분양될 것으로 예정됐었지만 분양 일정이 잠정 연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영진 닥터아파트 이사는 “입지와 가격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 보금자리주택이 매매시장, 분양시장을 불문하고 부동산시장 전방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주택시장이나 분양시장 회복세는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도 “부동산 시장은 그 어느때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들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건설사들의 부도 소식과 정부가 서민을 위해 내놓은 값싼 아파트로 인기를 끌고 있는 위례신도시 보금자리주택 사전 청약으로 수요자들이 이탈하는 등 악재가 산재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 건설사 유동성 심각

불황의 여파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나타나는 국지적 현상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현재 시장 상황을 단순 침체상황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부동산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체력이 약한 중소 주택건설사들의 유동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들어 금융권이 주택사업을 위해 빌려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상환을 재촉하고 있어 미분양을 많이 않고 있는 건설사들은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유동성 위기를 겪는 건설사들은 악성 미분양 적체로 자금 압박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수도권 3631가구, 지방4만4838가구로 5만 가구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건설사들에게 돈이 돌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미분양적체와 주택시장 침체가 극심한 지방의 경우 할인분양 등 고육지책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해소책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건설사들은 심각한 자금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방에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가 많은 건설사의 경우 일부를 전세로 전환하는 등 돈 만들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 들어 미분양 아파트의 임대주택사업을 전담 처리하는 별도법인을 설립해 물적 분할을 실시하는 건설사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을 몇 십채씩 구매한다고 하면 30~50%까지 싸게 넘기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악성 미분양 물량으로 자금 회전이 어려워지면서 중소 건설사들은 하나둘씩 무너져 가고 있다. 성원건설이 대표적인 사례다. 성원건설은 수도권과 지방에 미분양 물량이 쌓이면서 자금 회전에 어려움을 겪었고 해외 사업장에서 선수금을 받지 못하거나 수주계약 등이 취소되면서 부도 위기상황까지 치닫게 됐다.

성원건설 말고도 4~5곳의 건설사가 미분양 적체 등으로 유동성을 겪고 있어 향후 제2, 제3의 성원건설이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와 관련 건설사 관계자는 "중견 건설사 대부분이 미분양이 누적되면서 가장 큰 돈줄인 아파트 대금을 제때 회수하지 못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건설사들은 회사채 발행을 늘리고 보유 재산을 매각 하는 등 유동성 확보 방안에 ‘올인’ 하다 시피 하고 있다.

◆ 대책은 있나

하지만 현재 부동산 시장을 회복시킬만한 특별한 호재나 이슈가 없다. 호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보금자리주택 사전 예약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부동산 침제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대책이 있다면 정부에서 금융권 대출규제 완화와 부동산 상한제 폐지, 지난 2월 11일 종료된 양도세 감면 혜택 부활 등 정책적인 규제완화 뿐이다. 건설업계에서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인해 건설사들이 줄도산에 처할 위기에 놓여있다며 정부에 규제완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은 부동산 시장을 회복시킬 만한 재료가 정부의 규제완화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건설협회 등 건설관련 3개 단체가 “최근 주택시장이 미분양의 장기 적체와 주택공급 감소, 대출규제 강화 등으로 민간건설사의 주택건설 투자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규제완화를 강하게 요구한 것도 정부의 특단의 대책 없이는 부동산 시장이 되살아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대출 규제를 완화시킬 경우 부동산 시장으로 돈이 대거 유입되면서 다시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판단아래 부동산 관련 정책을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공식 석상에서 “금융규제 완화는 없다”며 LTV와 DTI 규제를 현행대로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시킨다면 부동산 가격을 잡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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