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안가셨습니까”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와 첫 상견례를 끝낸 직후 기자들에게 건넨 농담이다.
이날 오전 7시 25분께 김 총재보다 먼저 도착한 윤 장관은 은행회관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김 총재를 의식한 듯“아직 안오셨냐”고 작게 언급한 뒤 기자들을 향해 “왜 이리 많이 오셨냐. 방을 큰 데로 할 걸 그랬다”고 급히 화제를 돌렸다.
순간 그동안 이성태 전 총재와 한은 독립성과 출구전략의 과제가 남아 있는 만큼 이날 김 총재와도 다소 껄끄러운 분위기가 형성되는게 아닌지 분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28분께 김 총재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두 인사에 대한 기우는 깨끗하게(?) 사라졌다.
김 총재가 먼저 윤 장관에게 “안녕하십니까”라고 공손히 인사를 했고 윤 장관은 “어서 오세요”라며 화답했다.
김 총재는 윤 장관보다 늦게 온 것을 인식한 듯 “왜 이리 일찍 오셨냐. 빨리 올 것을 그랬네요”라며 윤 장관에게 인사를 청했다. 이에 윤 장관 대신 허경욱 재정부 1차관이 “건강하셨죠”라고 답변했다.
은행회관에서 이날 야채와 죽, 커피 등을 아침 식사로 제공했고 오전 7시 35분부터 회동을 시작해 1시간 10분~20여분까지 계속됐다.
이날 회동이 얼마만큼의 진전이 있었는지는 회동을 끝난 직후 드러난 두 인사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특히 회견장 문에서 김 총재가 먼저 나왔지만 윤 장관을 기다리며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를 인식한 듯 은행회관 정문에 들어서면서 짐짓 무거운 표정을 지었던 윤 장관은 회동이 끝난 직후 밝은 모습으로 취재를 하는 기자들에게 “아직도 안가셨냐”고 농을 건넨 뒤 “김 총재를 환영하고 축하 한다”고 치켜세웠다.
많은 취재진들이 모여있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농담까지 건넬 정도로 기분 좋은 여유를 부린 것은 그만큼 회동이 잘 진행됐다는 의미로 파악된다.
그는 이어“김 총재는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경험도 갖고 있다”며 “경제 성장, 거시 전망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고, 경제 협조 등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논의를 했다”고 언급했다.
김 총재 역시 “앞으로 두 기관이 협조해 발전해 나가겠다”고 시종일과 밝은 모습을 유지했다.
그동안 출구전략 시기를 앞두고 대립해온 이 전 총재를 대할 때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열석발언권 행사에 대해서도 김 총재는 크게 의식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윤 장관과 허 차관은 이날 열석발언권 행사를 계속 할 것이냐는 질문에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총재는 이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내세우지 않았고 불편해 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은 듯 했다.
첫 회동을 서로 성공(?)적으로 끝낸 두 기관. 하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는 만큼 과연 지금처럼 유연한 관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