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유럽중앙은행(ECB)이 채권 매입에 나서는 재정위기 사태 진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금융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유로존은 물론 유로화 붕괴 가능성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뾰족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3회에 걸쳐 통화정책 문제점과 외환ㆍ주식시장을 진단해본다)
(글 싣는 순서)
① ECB 국채매입...언발에 오줌누기?
② 유로 붕괴 현실화할까
③ 美 블랙먼데이 악몽...2010년은 1987년 판박이?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10일(현지시간)부터 일주일간 유로존에서 매입한 국채가 165억유로(약 23조3700억원) 규모에 달한 것으로 17일 밝혀졌다.
ECB는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까지 확대되자 시장안정을 위해 지난 10일부터 전례 없이 채권 매입 조치를 단행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ECB의 전례 없는 국채 매입 조치에도 불구하고 불신감이 꺼지지 않고 있다.
17일 유로화는 한때 4년래 최저치까지 곤두박질쳤고 증시는 여전히 약세에 머물고 있다. 3개월물 달러 리보(런던 은행간 금리)는 0.46%로 9개월래 최고점을 찍었다.
또 경제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일본은행(BOJ)이 실시한 50조엔 규모의 장기국채 매입에 비해 규모 면에서 훨씬 적은데다 시장의 전망 수준도 크게 밑돌았다.
시장에서는 ECB가 적어도 600억유로 규모의 국채를 매입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주 실시되는 네덜란드(18일, 40억~50억유로) 독일(19일, 60억유로) 프랑스(20일, 100억유로)의 국채 입찰은 문제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만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아일랜드(18일, 10억~15억유로) 스페인(20일, 30억~35억유로)은 국채 입찰에서 적지 않은 난항을 겪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12일과 13일 연이은 포르투갈과 이탈리아의 국채 입찰이 성공을 거두면서 시장의 긴장 완화 조짐이 보이는 듯 했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시장으로 완전히 돌아올 때까지는 ECB의 채권시장 개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럴 경우 장기적으로는 시장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투자자들은 ECB의 국채매입이 인플레이션을 유발시켜 유로화 가치를 한층 더 떨어뜨릴 것을 경계해 국채시장 이탈이 가속화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ECB의 전례없는 국채매입은 시장과 정부와의 위험한 치킨게임을 부추겨 오히려 리스크를 높이는 결과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영국 자산운용사인 리걸 앤드 제너럴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조지 그로츠키 애널리스트는 “시장에서는 아무리 자금을 공급해도 더 많은 자금을 요구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고 있다”며 “ECB의 태도는 유로존의 재정위기 문제를 재고하는데 지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신뢰를 손상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조만간 그리스 등 중채무국들이 채무 상환을 위해 재협상에 나설 것이라면서 특히 거액의 그리스 국채를 보유하는 유럽 각국의 은행들에 큰 손실을 입힐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러한 조짐 중 하나가 중채무국과 독일 국채간의 수익률 격차. 시장 리스크를 나타내는 이 지표는 현재는 격차가 줄고 있지만 1개월 전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미 투자은행 브라운브러더스해리만의 애널리스트들는 “유럽의 구제금융기금 조성은 그리스에게는 시간벌기용으로 채무를 줄이기에는 역부족”이라며 “ECB의 국채 매입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브라운브러더스해리만 애널리스트들은 특히 리스크가 유럽의 민간은행에서 ECB로 과도하게 이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미 시장조사업체 CMA데이터비전에 따르면 그리스 국채에 대한 5년간의 CDS 비용은 지난 13일에는 연간 52만9000달러에서 17일에는 61만1000달러로 증가했다.
또 포르투갈의 CDS 비용도 14일에는 전날의 15만5000달러에서 24만7000달러로 급증했다. 양국의 국채 금리도 다시 급상승해 그리스의 10년만기 국채수익률은 8%를 넘었다.
더 나아가 이번 주는 중대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이탈리아 대형은행인 우니크레디트의 애널리스트들에 따르면 네덜란드와 독일을 비롯한 유로존 국가에서는 이번 주 신규 국채발행을 통해 240억~270억유로의 자금조달을 계획하고 있다.
ECB는 구체적인 국채 매입 조치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어 ECB가 시장의 동요에 어떻게 대응할 지 여부가 향후 시장을 좌우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아일랜드의 경우 18일 15억유로 규모의 국채 입찰이 성공하면 올해 채무 상환 규모의 65%가 해결돼 비교적 안정적인 재무상태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시장에 최대 고비는 20일로 예정된 30억유로 규모의 스페인 국채 입찰이다.
유니크레디트의 키아라 크레모네시 애널리스트는 “ECB의 지원책에 의해 차입 비용 급등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ECB에 의한 국채 매입이 향후 언제까지 계속될지 또 개인투자자들이 그리스나 포르투갈에 대한 투자를 재개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ECB는 당초 계획보다 장기간에 걸쳐 국채 시장의 최후의 매입자가 될 처지에 놓인다.
크레모네시 애널리스트는 ECB가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로존 국가의 국채의 5~10%를 매입하게 될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300억~600억유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