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공매도 허용 추진 문제없나

입력 2010-05-20 15:17 수정 2010-05-2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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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 공매도로 시장 급등락 우려

독일의 금융당국이 헷지펀드의 공매도로 시장이 급등락을 보이자 국채 공매도 금지라는 카드를 꺼내든 반면 우리의 경우 국채 공매도 허용을 추진하고 있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무차입공매도 허용 결정은 한국 채권시장의 시티그룹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을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하지만 거래 규모가 작은 우리의 경우 헷지펀드의 공격을 받을 경우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헷지펏든의 공매도로 골병든 EU

지난 4월 말 그리스 국채 금리는 하루 동안 무려 6%포인트나 급등해 국채 가격이 폭락했다.

제2의 그리스로 지목된 포르투갈 국채, 스페인 국채 금리도 연일 급등세를 이어갔다.

재정난이 불거지기 전에만 해도 이들 국채 하루 금리 변동폭은 0.1%포인트 미만이었지만 헤지펀드(hedge fund·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단기투자기금)를 중심으로 한 투기세력의 국채 공매도(空賣渡·short selling)로 급등락을 보였다.

공매도란 특정 채권(주식)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될 경우 채권도 없는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내고, 나중에 채권을 싸게 사서 외상거래를 청산하는 거래를 말한다.

그리스가 EU(유럽연합)와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은 투기세력의 공매도 공격으로 국채 금리가 급등(채권 가격은 급락)하는 바람에, 더는 채권발행이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헤지펀드들은 또 남유럽발 금융위기 확산 과정에서 남유럽 국가들의 국가부도 스와프(CDS·채권 부도 위험에 대비하는 파생상품)를 저가에 대량 매입, 고가에 되파는 수법으로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

그리스 사태가 악화 일로로 치다르던 당시 독일 앙켈라 메르켈 총리는 "금융시장에서 과민반응을 촉발한 헤지펀드 세력들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공개 경고했다.

◇독일 공매도 금지카드로 헷지펀드에 찬물

독일 정부와 EU는 '금융시장의 하이에나' 헤지펀드의 투기활동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면서 규제에 착수했다.

독일 금융감독 당국은 19일 0시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유로존 회원국이 발행한 국채와 자국 은행·보험사 주식에 대

한 공매도 활동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헤지펀드의 공매도가 채권 및 주식의 가격 급변동을 촉발,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독일은 투기 단속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른 EU 회원국에도 비슷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했다. 같은 날 EU 27개 회원국 재무장관들은 헤지펀드(사모펀드 포함)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입법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헤지펀드 규제안은 ▲비(非)유럽권 펀드가 EU에서 영업하려면 EU 금융감독 당국에 반드시 등록을 할 것 ▲펀드 운영 내용에 대해 정례 보고를 할 것 ▲펀드의 자금 차입에 대한 제한 ▲펀드 매니저에 대한 보수 제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헤지펀드의 투기활동을 억제하고, 특히 미국계 헤지펀드들이 유럽 금융시장에 들어와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고 영업을 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나 헤지펀드 산업 비중이 큰 미국은 이런 규제가 자국 펀드 산업에 대한 차별이며 일종의 보호주의라며 비난하고 있어 미·유럽 간 무역분쟁이 발발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무차입공매도 허용 검토

독일과 EU와 달리 우리 금융당국은 자본시장의 깊이 및 유동성 증가, 그리고 자본시장의 국제화를 위해 채권에 대한 무차입공매도(naked short selling)를 허용키로 원칙적으로 결정했다.

주식을 보유하거나 차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주문을 내는 무차입공매도는 한국에서 법적으로 허용되지만, 금융위원회의 방침에 의해 사실상 금지돼 있다. 금융위원회는 정책을 수립하고, 금융감독원은 그 정책을 집행한다.

새 규정에 입각해 시장참여자들은 수도결제 및 평판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강력한 규제 및 세심한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권혁세 금융위 부위원장은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파이낸셜타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정부는 무차입공매도 허용으로 가고 있지만 일시 전면 허용은 아니며 그 전에 전제조건들이 필요하다”며 “그 조건들이 충족되면 단계적으로 허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로비단체인 아시아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의 니콜라스 부르삭 이사는 “그 같은 조치가 한국 채권시장을 다른 채권시장과 같은 수준으로 격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에서 채권에 대한 무차입공매도는, 유동성이 증가되고 딜러의 펀딩에 보다 유연성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건전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서구의 규제당국들은 채권이 부도나더라도 손실을 보전해주는 신용디폴트스와프(CDS)에 대한 공매도는 금지를 고려 중이다. 일부 주식시장에서는 주식 무차입공매도도 이따금씩 금지되고 있다.

권 부위원장은 일단, 유동성이 가장 큰 국채판매를 위해 무차입공매도 금지가 풀릴 것이라고 밝혔다.

한 국채시장 관계자는 “금융위원회는 6개월 내에 국채 무차입공매도를 허용한 뒤 점진적으로 그 밖의 채권에 대해서도 확대 적용할 방침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관계자는 “무차입공매도 허용 결정은 한국 채권시장의 시티그룹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을 위해 매우 중요한 조치로 간주되고 있다”며 “하지만 시장 규모나 여러 상황을 볼 때 헷지펀드가 얼마든지 시장을 흔들 수 있어 우려가 된다”고 덧붙였다.

WGBI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일반적으로 추종하는 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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