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미국발 신용위기에 이어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등 이른바 3대 위기 사태가 잇따르면서 글로벌 신용평가사에 대한 비난도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자본시장을 좌우했던 신평사들이 방만한 경영과 무책임한 평가로 위기를 조장했다는 것이다. 3회에 걸쳐 신평사의 역사와 문제점을 짚어보고 향후 과제를 진단해본다)
(글 싣는 순서)
① 글로벌신평사 성장과 오욕의 역사
② 신평사는 왜 비난을 받는가
③ 봄날 간 신평사...앞날은?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이들은 금융위기를 초래한 가해자라는 비난이 가시기도 전에 이제는 피해자로 불리고 있다.
세계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스탠더드앤푸어스(S&P), 피치가 지난달 그리스와 포르투갈, 스페인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이로 인해 세계3대 신용평가사의 영향력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들에 대한 견제와 비판의 목소리도 커져가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 글로벌 금융계와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됐는지 이들의 역사와 발전방향을 짚어본다.
무디스와 S&P, 피치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본주의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무디스의 역사는 1909년 출판업자인 존 무디가 존무디앤컴퍼니(John Moody&Company)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존 무디는 금융기관, 정부 및 광산업과 제조업체 등의 주식과 채권에 관한 정보와 통계를 제공하는 매뉴얼을 출판했는데 이 매뉴얼은 곧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매진됐다.
1907년 주식대폭락 때 존 무디는 자본부족으로 그의 회사를 팔아버려야 했지만 1909년에 단순히 정보만 제공하는 것에서 나아가 주식가치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투자자에게 제공한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존 무디는 1909년에 철도 투자를 위한 평가보고서를 발간했는데 미국 철도기업의 발전과 맞물려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 때 무디스는 철도회사에 대한 신용도 분석에서 Aaa에서 C에 이르는 등급제를 도입했고 1930년대 대공황 때 자사 신용등급의 신뢰성을 입증하면서 S&P와 더불어 미국 신용평가시장을 지배하게 됐다.
S&P는 헨리 바넘 푸어가 1868년에 아들인 헨리 윌리엄 푸어와 함께 미국 철도 매뉴얼을 출판하면서 시작됐다.
19세기 중반 미국은 개발도상국가로 철도와 운하 등 인프라 프로젝트 진행이 활발히 이루어 지고 있었는데 여기에 소요되는 자금은 유럽 투자자들로부터 조달받아야 했다.
그러나 유럽 투자자들은 미국의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었고 이에 착안한 헨리 바넘 푸어가 미국 철도회사 및 운하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S&P의 역사가 시작됐다.
1941년에 통계업체였던 스탠더드 스테틱스가 푸어스 출판사를 인수하면서 오늘날의 S&P가 됐고 1966년 대형 출판업체인 맥그로힐에 인수됐다.
피치는 1913년 존 놀스가 뉴욕에서 피치 퍼블리싱 컴퍼니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1975년에 무디스, S&P와 함께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의해 국가공인통계평가기관(NRSRO)으로 선정됐다.
1997년에 비미국계 금융기관 신용평가로 유명한 영국 런던의 IBCA와 합병하면서 피치 IBCA그룹이 됐다.
프랑스의 피말렉사가 지주회사이며 현재 미국 뉴욕시와 영국 런던시에 이중본사를 두고 있다.
지난 2000년 세계 4위업체인 더프앤펠프스(Duff&Phelps)를 인수했다.
이들 3대 신용평가사가 지금의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게 된 것은 지난 1975년 미국이 NRSRO 시스템을 도입하고 나서부터이다.
미 SEC는 1차 오일쇼크로 촉발된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NRSRO로 이들 3대 신용평가사를 지정하고 증권을 발행하고자 하는 업체들은 반드시 3대 신용평가사의 신용평가를 받도록 했다.
현재 NRSRO로 지정된 업체는 전세계 200여개 신용평가업체 중 불과 10개사에 불과하고 그 중 7개사가 미국계, 2개사가 일본계, 1개사가 캐나다계이나 3대 신용평가사의 영향력은 나머지 업체들을 압도하고 있다.
NRSRO 지정으로 독점적 지위를 굳힌 3대 신용평가사는 1980년대 정크본드시장의 발전과 더불어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정크본드는 지난 1977년에 미국의 드렉셀 번햄 램버트사가 처음으로 개발했고 1980년대 기업인수합병 바람이 불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신용평가 수요를 급증시켰다.
1987년 ‘블랙먼데이’ 사태로 정크본드가 몰락한 이후에도 3대 신용평가사는 90년대 세계화의 열풍에 힘입어 오히려 더 성장했다. 세계의 유수한 기업과 국가가 이들 업체의 신용평가를 받아야만 미국 투자자들을 겨냥한 채권을 발행할 수 있었기 때문.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 이들 3대 신용평가사의 존재가 깊이 각인되게 됐다.
무디스는 한국의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7년 11월28일~12월21일 사이에 3차례에 걸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6등급이나 강등했고 S&P와 피치가 그 뒤를 이었다.
이들 신용평가사의 강등조치로 한국은 자금조달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한국인들에게 이들 3대업체는 저승사자와 같았다.
그러나 이들 3대 업체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최근에 터진 유럽 재정위기로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이들 3대업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을 예측하지 못하다가 위기가 터지자 그제서야 관련 파생상품 및 업체의 등급을 갑자기 낮추면서 금융혼란을 더욱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무디스와 S&P, 피치가 지난달 그리스와 포르투갈, 스페인의 국가신용등급을 일제히 강등하자 세계 각국은 비판을 넘어 규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7일 주제 마누엘 바로수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헤르만 판롬파위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신용평가사에 대한 규제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미국 상원은 SEC의 감독을 받는 채권평가위원회를 신설해 신용평가사들의 채권등급평가의 적절성 여부를 심사토록 하는 규제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들 3대업체에 대한 규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영향력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3대업체의 시장점유율은 미국에서 95%, 유럽에서 90%에 달한다. 이들 업체를 대체할 만큼 국제적 공신력을 인정받는 경쟁업체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들이 본연의 업무인 신용평가에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최근의 유럽사태와 같은 실패를 반복한다면 이들의 안정된 지위도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