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날 현대그룹은 "그룹 입장은 지난 6일 이미 발표한 그대로이며, 채권단이 이번 결의대로 실제 행동에 들어가는지를 지켜보고 향후 조치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대그룹이 밝힌 입장은 외환은행이 재무구조 개선 약정 체결 지연에 대해 대출회수, 신규여신 중단 조치를 내리는 것은 형평성을 잃은 과도한 제재라며, 대출금을 모두 상환해 외환은행과의 관계를 끊겠다는 것.
채권단의 재무약정 체결을 요구해 법적인 조항까지 조목조목 들이대며 강하게 반발했던 현대그룹으로서는 끝까지 가보겠다는 입장이다.
외환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현대그룹의 이 같은 예상치 않은 반발에 세 차례나 재무약정 시한을 연장해 줬으나 결국 신규여신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채권단이 신규여신을 중단함으로써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 현대로지엠 등 계열사들은 이날 오전 9시부터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다.
현대그룹이 보유한 현금 유동성은 1조2000억∼1조3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이 같은 대립이 단기적으로는 견딜 수 있다 할지라도, 장기적으로 치달을 때에는 유동성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경우 해운업 특성상 선박 운영비나 항만 운영비 등 장기간 금융 대출을 받지 못하면 정상적인 기업 운영은 불가능하다. 해외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뚜렷한 대안으로 보이지 않는다.
채권단은 이번 달에는 신규 여신이 중단되지만 다음 달부터는 만기가 도래하는 여신에 대한 회수가 시작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재계와 금융권 등에서도 이번 현대그룹과 외환은행의 갈등에 대해 선례를 쉽게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향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짐작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현대그룹과 외환은행간의 재무약정 체결 이슈는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극한으로 치닫고 있어 향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전망하기 힘들다"며 "하지만 사업을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은행 대출이 막힌다는 것은 분명 목을 죄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현대그룹이 많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채권단에서 아직 직접 행동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후에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 채권단들 사이에서도 현대상선이 2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는 등 실적이 좋아지고 있어 현대그룹의 재무약정 체결에 대해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실제 행동으로 옮길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현대그룹은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촉발된 금강산 사업 중단과 수차례 시도된 경영권 분쟁 등 큰 위기를 겪어왔지만, 또 그때마다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채권단과의 재무약정 체결에 대해서도 현대그룹이 어떤 비장의 카드를 내놓을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