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근의 재계산책]상생협력,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입력 2010-09-0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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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대기업들이 중소 협력업체와 공정한 거래를 이행하는 지를 계량화하는 대기업 상생협력지수인 '호민인덱스(가칭)'를 만든다고 한다. 올해 삼성, 현대차, LG, SK 등 10대 그룹을 중심으로 시범조사를 실시하고, 내년부터 30대 그룹으로 확장한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지난 여름 뜨거웠던 날씨만큼이나 한국 사회를 달궜던 이슈가 바로 '대기업 책임론'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각 부처 장관들이 잇따라 대기업 책임론을 거론하자 삼성전자, 현대차, SK, LG, 포스코, GS 등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주요 그룹들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상생협력방안을 내놓았다.

정부의 ‘대기업 책임론’을 내세운 압박에 "정부가 기업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비판론이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큰 그림 차원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이 강화돼야 한다는 것일 뿐, 시장경제논리에 맡기겠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시장경제원리에 맡기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나온 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기업호민관실과 공정거래위원회ㆍ중소기업청이 함께 공정거래 유무를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코미디'같은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코미디 같은 것은 '호민인덱스'를 위한 조사에서 대기업이 응할 의무는 없지만 조사협력여부도 평가배점에 포함시킨다고 한다는 점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건 뭐 조사에 협조를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모를 이야기"라면서 "마치 '안해도 되는데 안했을 때는 별로 좋을 게 없을 것'이라는 공갈과 다르지 않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또 이 대통령은 이르면 다음 주에 재계 총수들과의 회동을 통해 대·중기 상생협력을 당부하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가 시장경제원리에 상생협력강화를 꾀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실질적으로 정부 권력을 이용해 상생협력강화를 강요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중소기업, 특히 대기업과 납품관계에 있는 2·3차 중소기업들이 경영상 애로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정부가 거래관계 상 상대적으로 약자인 중소기업에게 도움을 주는 정책이나 방향을 마련해줘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의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현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강화를 도모하는 데 방법상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대기업 총수들에게 우선 상생협력강화를 당부하는 것이 우선인지,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인지, 아니면 상생강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인지도 모른 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상생협력 강화를 추진하는 정부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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