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기아차(?) 투아렉을 봤어요. 분명 우리차 투아렉인데 '기아차' 앰블럼을 달고 있더라고요. 앰블럼을 바꾼(그는 "rebadging"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투아렉을 보고 깜짝 놀라 폭스바겐 코리아 박동훈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습니다."
폭스바겐 본사임원 입장에서는 놀랄 일이었을 겁니다. 쏘렌토 가격의 2배가 넘는 투아렉에 상대적으로 값싼 기아차 앰블럼으로 달려 있었으니까요. 물론 폭스바겐 투아렉이 무조건 좋고 기아차 쏘렌토가 상대적으로 나쁘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이 차를 직접 본적이 있는데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서울시내 유명 호텔 앞에 버젓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차의 오너는 어느 종교인으로 알려졌습니다. 투아렉을 너무나 사랑했던(?) 어느 스님께서 값비싼 고급 수입차를 타는게 주변의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우려해 국산차 앰블럼을 달았다는 후문이었습니다.
자동차에게 앰블럼은 하나의 얼굴이자 태생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독일 명차의 앰블럼을 자기차에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는 오너를 종종 볼 수 있는데요. 비록 앰블럼이지만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내년이면 GM대우는 시보레 브랜드를 도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선보인 알페온 역시 기존의 GM대우차와의 차별화를 위해 별도 앰블럼을 달았습니다. 이른바 'stand alone' 브랜드인데요. 바로 직전의 베리타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현대차 역시 제네시스와 에쿠스에는 현대차를 의미하는 'H' 앰블럼 대신 고유의 엠블럼을 달고 있습니다.
사정이 조금 다르지만 쌍용차도 수출형 SUV에는 쌍용의 SS를 의미하는 원형 앰블럼 대신 체어맨 전용 앰블럼을 달고 수출하고 있습니다. 독일 오펠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앰블럼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물론 개개인의 사정 또는 취향에 따라 앰블럼을 바꿔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앰블럼을 바꾸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2인자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세계 최고급 브랜드로 자타가 공인하는 독일 메르세데스-벤츠는 절대 경쟁 모델과의 비교시승이나 앰블럼을 가린 '블라인드 테스트'를 치르지 않습니다.
반면 많은 메이커가 신차 출시 때마다 벤츠와 비교시승을 합니다. 그런 행사 자체가 "우리가 벤츠보다 사실 못하거든요"를 인정하는 셈이지요. 진정한 1등은 절대 비교시승이나 블라인드 테스트를 치르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에겐 이런 고급 명차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차를 타고 있든 지금 당신에게 충직한 발이 되어 주는 당신의 차에 '절대적인' 자부심을 가지면 됩니다.
비록 옛날의 반짝임을 잃고 꼬질꼬질한 얼룩이 묻었어도 그 순간 벤츠의 세 꼭지별 앰블럼보다 당신 차의 앰블럼이 더 빛날지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