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III'는 결국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인가. 글로벌 대형은행들이 숨죽여 기다려온 바젤III 최종안에 대해 은행권과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안도와 함께 향후 파장에 대한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27개 주요국 은행감독 당국으로 구성된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가 12일(현지시간) 발표한 은행 규제개혁안 이른바 ‘바젤III’는 기존 위험가중자산 대비 2%였던 보통주와 내부유보로 구성된 협의의 핵심적 자기자본비율을 실질적으로 7%로 높이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것도 단번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2013년부터 2019년까지 6년에 걸쳐 기준을 만족시키도록 하고 있는데다 대부분의 은행들이 이미 ‘바젤III’의 자기자본 기준을 충족시키고 있어 여유가 생긴 은행권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러나 세계 경제는 금융 위기에 이어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의 더블딥 우려로 더블딥(이중침체) 가능성에 노출돼 있는 상황.
일각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수익 기반이 약해져 향후 은행권의 추가 증자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단계적 적용에 안도=BCBS는 성급한 규제 강화가 대출 거부 사태를 빚어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오는 2013년부터 적용하는 ‘바젤III’를 2019년 1월까지 유예했다.
프랑스의 소시에테제네랄과 미국 JP모건, 일본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 등 ‘바젤III’의 자기자본 기준을 어느 정도 충족시키고 있는 글로벌 대형 은행들 사이에서는 “실질 7% 달성은 불가능한 수치가 아니다”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시장에서는 주가 상승 등으로 화답했다.
13일(현지시간)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오름세를 기록했고 뉴욕 증시와 유럽 증시도 상승세로 거래를 마쳤다.
이연세금자산이나 다른 금융기관에 대한 출자 등에 대해선 협의의 핵심적 자기자본에 산입할 수 있는 것은 각 은행이 보유한 보통주의 10%, 총 15%까지를 상한으로 정하고 있다.
이번 합의에서는 이 상한을 초과하는 부분을 곧바로 자기자본에서 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산입할 수 있는 규모를 축소하기로 돼있다.
일련의 규제가 시간을 들여 단계적으로 도입됨으로써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극단적인 대출 거부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누그러진 셈이다.
◆일단은 합격점...그러나 섣부른 낙관은 금물=글로벌 주요 은행들은 ‘바젤III’의 자기자본 충족 기준을 대체로 만족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 은행들은 대부분이 합격점이다.
로치데일 증권의 리처드 보베 애널리스트는 13일자 보고서를 통해 자본이 100억달러 이상인 62개 미국 은행 가운데 61개는 바젤Ⅲ의 자본 비율을 충족시킨다고 밝혔다.
각 사의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자산기준 미국 4대 상업은행의 보통주 자본비율은 7.5~9.6%에 달한 것을 나타났다.
씨티그룹이 9.7%로 가장 높았고 JP모건은 9.6%, 뱅크오브아메리카 8.0%, 웰스파고 7.4% 순이었다.
보베 애널리스트는 "새로운 규정은 대부분의 측면에서 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미국 대부분의 대형 은행들은 단기적인 자본 조달이 필요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일본 은행들의 경우 지난 6월말 현재 협의의 자기자본 비율은 미쓰비시UFJ가 6.6%, 미쓰이스미토모가 5.8%, 미즈호가 3.6%였다.
2013년까지 3.5%, 2014년에는 4.0%로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한다는 '바젤III'의 계획에 부합하는 수준이다.
이들 은행은 2013년 1월말까지 미쓰비시UFJ는 7.2%로, 미쓰이스미토모는 6.7%로, 미즈호는 5%로 끌어올릴 전망이다.
그러나 이는 경기동향의 변수를 감안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의 구마노 히데키 애널리스트는 “경기변동이 심해 은행의 수익 확대 목표가 제대로 서지 않은 가운데 엄격하지 않다고 낙관하는 것은 경솔한 생각”이라며 “은행들이 곧바로 대규모 자산 압축에 나설 필요는 없어졌지만 생각만큼 수익력이 강해지지 않으면 추가 증자나 대출거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로존은 열외=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촉발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유로존 금융섹터는 각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다.
국가부도 위기 일보 직전에 놓인 아일랜드 그리스를 포함해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물론 최근에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존에서 비교적 안정권으로 꼽히는 독일의 은행부문까지 지불능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바젤III’를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주장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바젤III가 전면적으로 도입되기까지 6년간의 유예 기간이 주어졌지만 그 사이에 유로존의 위기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관했다.
FT는 아일랜드의 경우 은행권의 국유화나 회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해소해야 하며 독일은 은행부문의 증자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이는 란데스방크나 슈파카세 같은 지방은행의 통폐합을 정중하게 표현한 것이다.
FT는 “유로존 은행권에는 바젤III가 이미 적용되지 않는 시스템”이라며 “5년 후에도 여전히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존에서는 금융위기가 끊없이 계속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 바젤III, 전문가들도 온도차=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콜롬비아대학의 조제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번 규제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움직임”이라 평가하고 “새로운 자기자본 규제 도입이 늦었을 경우 일반 시민들이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현 시점에서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은 금융기관에 대해 시장이 ‘즉시 처벌’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사이먼 존슨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는 “전후 최악의 금융 위기 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결국 최소한의 규제에 그쳤다”며 “자기자본 비율은 어쨌든 15%로 해야했다. 호경기때라면 최대 20%로 할 필요가 있었다”고 꼬집었다.
법률업체인 설리반앤크롬웰의 로진 코엔 회장은 “중요한 것은 바젤위가 올바른 결정을 내렸는지, 그리고 기준에 미달한 금융기관을 시장이 즉시 처벌할지 여부”라며 모기지관리용역권(MSR)을 예로 들며 “향후 이례적인 자본 비용을 위해 그것들을 보유하기 어려워진다면 은행은 MSR 조성과 보유 판매에 소극적이 될 것을 우려했다.
MSR은 최초 대출기관이 모기지 채권을 특수목적기구(SPV) 등에 양도한 후 채권관리기관(Mortgage servicer)이 해당 채권을 관리하는 대가로 받을 예상수익에 대한 계약 상의 권리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