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현 회장은 이 날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故 연강 박두병 초대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이같이 말하고 "선친인 박두병 회장은 오늘날 두산의 주춧돌을 쌓으셨고,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기업인의 사회적책임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셨다"고 밝혔다.
이어 두산그룹 퇴직임직원 모임인 '두산회' 이병수 회장은 "과거 1962년 화폐개혁 당시 임금이 체불됐을 때 매우 마음이 아프다고 하는 등 인간적인 면이 깊었던 분"이라며 연강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이어 이현재 전 국무총리는 "연강 선생은 어려운 시기에 대한상의 회장을 맡아 기업인들을 하나로 묶고, 민간 중심의 성장 시대를 연 주역이었다"며 "늘 원칙이 확고한 분이었지만 동시에 부드럽고 한없이 따뜻한 리더십의 소유자였다"고 회고했다.
고 박두병 회장은 지난 1910년 박승직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두병 회장은 1936년 박승직 상점 경영에 참여했다. 이후 1951년 박승직 상점의 이름을 두산상회로 바꾸면서 두산 시대를 열었다.
박두병 회장은 당시로는 드물게 경성고등상업학교(現 서울대 상대)를 나온 수재로 1952년 동양맥주, 1953년 두산산업, 그리고 1960년 두산건설 설립 등을 통해 사업영역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근대적 경영체계를 확립했다.
그는 인재경영을 가장 중요시 했으며 그의 이같은 철학은 현재 두산그룹의 광고 캠페인인 '사람이 미래다'라는 메시지로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1967년부터 1973년까지 역대 최장기간 대한상의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 기업체질 개선과 산업간 합리화 지침 설정 등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한 것으로 평가된다.
1970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상공회의소연합회 회장에 피선되어 한국기업의 국제적 지위 향상과 외국 진출 교두보 마련에 크게 이바지하기도 했다.
박두병 회장의 일에 대한 유명한 일화도 있다. 그는 1972년 11월 폐암 수술 이후 타계 한 달전인 1973년 7월 세 번째로 대한상의 회장에 취임했을 때에도 "내일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기업과 국내 상공업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말하는 등 일과 국가 경제발전에 대한 열정이 높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이 날 기념식에는 박용곤 명예회장과 박용현 회장을 비롯한 전ㆍ현직 임직원 등 500여명이 참석, 고인의 뜻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