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先代회장 꼭 빼닮은 삼성家 여장부

입력 2010-10-07 11:00 수정 2010-11-3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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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홍종현
‘한국 최고의 여성 주식부호’, ‘삼성 故 이병철 회장의 막내딸’, ‘이마트 신화의 주인공’, ‘대한민국 여성 직장인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여성 CEO’…. 대한민국 유통산업의 한 획을 그은 이명희 신세계 회장(67)을 일컫는 수식어들은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10월 4일 기준으로 이회장이 보유한 신세계 주식가치는 1조9964억원으로 2조원을 코앞에 두고 있다.

2조1469억원으로 4위를 달리고 있는 유통 맞수 롯데의 신동빈 부회장과의 차이가 1505억원으로 좁혀졌다. 법적으로 1997년 삼성에서 완전 분리하고 98년 회장 취임 당시 신세계의 주가가 1만5000원대에서 현재 40배가 넘는 61만원대가 됐으니 이 회장의 경영능력과 리더쉽은 한국 사회에서 검증받은 지 오래다. 그러나 그녀 나이 고희를 맞는 2013년 세계 10대 유통그룹이 되었을 때 이 회장의 수식어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이명희 회장의 고희 프로젝트=2005년 5월 이명희 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신세계의 미래 비전에 대해 “2013년까지 신세계를 세계 10대 유통그룹으로 키울 겁니다. 국내에 이마트를 130개, 중국에도 이마트를 25개까지 늘릴 겁니다”라고 답했다.

이병철 선대회장이 68세 때 고희 프로젝트로 반도체 사업의 성공을 목표로 했다면 이 회장은 신세계를 전세계 유통그룹의 선두권에 올려놓는 것으로 목표를 잡았다.

그룹의 비전을를 묻는 질문에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그룹 오너의 치밀함은 고 이병철 회장의 경영스타일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삼성가와 수십년을 함께한 구학서 신세계 회장은 “선대 회장님은 치밀하고 합리적인 분이십니다. 굉장히 엄하셨죠. 이건희 회장은 한곳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면서 기발한 발상이 많은 분입니다. 너그러울 땐 너그러우세요. 이명희 회장은 아버지 쪽이세요”라고 회고했다.

학창시절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이명희 회장을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회사로 불러 앉힌 이후 국내외 경제인이나 관계 인사와 만나는 자리에 배석시키며 경영수업을 시켰으니 경영 스타일이 비슷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 회장은 2007년 신세계 사보에 게재한 글에서 “(나는 늘) 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세상의 이치를 알고자 했으며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항상 아버지와 함게 하고자 했다.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태산이 무너진 듯한 슬픔을 견딜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아이디어를 얻는 방식도 아버지와 비슷하다. 이 회장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미국 여행에서 월마트 등을 본 뒤 ‘이마트 신화’를 일군 아이디어를 회사에 제안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 중의 하나다. 지금도 이 회장은 1년에 한두번씩 어김없이 미국과 유럽을 오가고 있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도 새로운 사업을 구상할 때 일본에 건너가 언론인과 학자, 사업가들을 만나며 얻은 아이디어로 새로운 업종을 시작하는 발판인 ‘도쿄구상’을 매년 반복해왔다.그러나 이러한 아이디어가 그룹의 주력 업종으로 확정, 사업이 진행되기까지는 전문 경영인과 임직원들의 몫이 남아있다.

이병철 회장은 이 회장이 출근하기 전 몇가지 지침을 주었다. 이 회장은 “출근 전날 아버지는 저를 불러 말씀하셨어요. 첫째가 ‘서류에 사인하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책임을 피하라는 게 아닙니다.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라는 것이죠. 대신 믿지 못할 사람은 아예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무엇인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고도 하셨어요”라고 말했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오너들의 기존 생각을 뒤엎고 전문 경영인을 통해 기업이 스스로 진화하면서 흘러갈 수 있는 조직력을 체계화하는게 이 회장의 평소 지론이다. 신세계는 지금도 이명희 회장 아래 정용진 부회장과 이마트와 백화점 부문에 각각 전문 경영인을 두고 있다.

이병철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그대로 닮은 이 회장은 이러한 조직체계 아래 2013년 ‘고희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차근차근 목표한 길을 밟아가고 있다. 신세계는 올 상반기 6조9915억원을 달성해 올해 13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13년 33조원의 매출을 달성하기 위해 중국 등으로의 해외 진출 확대와 창고형 할인매장 도입, 다각적인 M&A 시도 등이 이어져야 한다. 이 회장의 새로운 ‘매직’이 시도 실현될지 궁금한 시기이기도 하다.

◇호암과 이명희, 그리고 정용진= 지난 2월 삼성그룹 창립자 고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 리셉션에서 이건희 회장과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두손을 맞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사진이 지면을 장식해 화제가 됐다.

이건희 회장은 가족 대표로 인사말을 하는 와중에도 초청인사들과 다과회를 가지며 누나인 이인희 한솔 고문과, 여동생인 이명회 회장과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눈시울을 붉혔다. 이병철 회장은 이건희 회장과 이명희 회장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구심점 그 자체였다.

이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의 3남 5녀 막내딸로 태어났다. 이화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한 그는 1967년 정재은 조선호텔 명예회장(71)과 결혼했다. 학교 때부터 꿈이 ‘현모양처’였던 이 회장은 결혼 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42)과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38)을 낳고 키우면서 줄곧 집에서 살림만 했다. 그러다가 79년 마흔 가까운 나이에 아버지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부름을 받고 신세계 이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정용진 부회장이 당시 “어머니에게 집은 ‘자는 곳’이었다”고 말할 만큼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아버지와 함께 한 날들을 가장 행복한 시절로 추억하고 있다. 이 회장은 사보에서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를 차갑고 냉정한 경영자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따뜻하고 인자한 분이었다.

막내딸인 내게는 큰 칭찬이나 꾸지람 없이 항상 정을 주셨다. 살아 계시는 동안 아침저녁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거의 매일 어디든 동행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삼성가 사람들에게도 이 회장은 막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애교덩어리였다. 이 회장의 사촌오빠인 이동희 전 제일병원 이사장은 그의 자서전에서 “어린 시절에는 애교덩어리였고 나이가 들어서는 매사를 깔끔하게 처리해서 누구나 명희를 좋아했다”고 밝히고 있다.

호암의 맏아들인 이맹희(이재현 CJ 회장 부친) 전 CJ 회장 역시 그의 자서전에서 “아버지가 나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하면 마지막까지 내편을 들어서 아버지를 설득하려 한 것도 명희였다. 나는 경제적으로 명희 덕을 많이 봤다”며 정많은 이 회장의 인간적인 모습을 글로 남겼다.

이병철 회장이 위암에 걸려 도꾜에서 수술을 받을 때의 일화도 인간 이명희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수술이 끝나고 난후 아버지께 수술 시작 전 무슨 생각을 했느냐는 물음에 ‘니가…’ 하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자 아버지 가슴에 얼굴을 묻고 눈물만 흘렸다는 얘기는 일반 부녀의 정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자녀들에 대해서는 엄하게 가르쳤다고 한다. 반면 신세계 백화점 리뉴얼 때 바닥재 하나까지 일일이 보고받는 등 이 회장의 세심함은 정 부회장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트위터를 통해서는 대중과 소통하고 직원들에게는 대화와 여러 방법을 통해 창조적 에너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명희 회장의 올해 나이는 67세다. 2013년에 고희(古稀)를 맞는다. 직역하면 고래로 드문 나이라는 뜻인데, 70수를 누리는 노인들이 너무 많아 요새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이 회장에게 고희는 대한민국 유통기업으론 처음으로 동북아를 넘어 세계 10대 유통기업에 오르는 비전을 이루는 해다. 여성 기업인으로는 처음으로 ‘고래로 드문 일’이 될지 지켜보는 이들의 관심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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