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세스 오블리주’(richess oblige)를 실천하는 부자가 진정한 애국자다.
서구사회가 선진사회가 될 수 있었던 동력으로 흔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든다. 지도층이 나라가 전란에 처하면 목숨을 내놓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재산을 내 놓는 문화를 말한다. 이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사회 지도층의 도덕과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리세스 오블리주는 도덕과 책임의 실행은 물론 재산의 환원과 기부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최근에는 더욱 가치를 받고 있다.
부자는 치열한 경쟁구조로 짜여져 있는 자본주의에서 승리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고 경쟁력을 높이려면 부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없애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승’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의 책임 역시 단순히 돈만 버는 것이 아니고 법인격을 가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의 범위 내에서 가치창출을 추구해야한다. 기업들이 정당한 부를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부자는 존경의 대상이다. 이슬람에 따르면 부(富)를 신(神)의 하사품으로 간주한다. 무함마드가 “가난은 이슬람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라고 했듯이 이슬람은 가난을 죄악시한다.
불교에선 정당한 영리추구를 허용한다. 특히 민중 불교인 대승불교에선 적극적으로 부의 가치를 말한다. 부의 가치는 시여(施輿)의 의미를 갖는데 물질적으로 빈곤한 자에겐 물질을, 마음이 빈곤한 자에겐 마음을 베풀도록 하고 있다.
기독교에선 신약과 구약이 서로 다른 논리를 펼친다. 개신교의 돈에 대한 개념은 ‘돈=축복’이다. 부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푼다는 증거물로 구약을 숭상하는 유대인에게 부는 축복이다.
부자는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선행과 함께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다. 부는 사회로부터 축적한 축복이므로 공동체를 위해 부를 사용해야 한다. 세계 최고 거부인 워렌 버핏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존경받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최근 세계적인 영화배우인 주윤발은 “아무것도 갖고 갈 생각이 없다”며 “내가 죽게 되면 99%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모든 돈은 내 것이 아니다”며 “다만 내가 벌었을 뿐 영원히 소유하지는 못한다”는 말로 주위의 귀감이 됐다. 한국에선 원로 영화배우 신영균씨가 자신 소유의 서울 중구 초동의 명보극장(명보아트홀)과 국내 최대 영화박물관인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등 500억원 상당의 재산을 영화계 및 문화예술계의 공유재산으로 기증키로 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부자들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부자들은 정경유착, 탈세, 불투명의 부의 세습 등 어두운 단상이 비춰진데다,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다 법망에 걸리면 비로소 기부를 선언해서 법의 심판과 사회적 비난을 모면하려는 사례가 적잖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한정된 부(富)를 나눌 때, 한 사람이 많이 가져가면 다른 사람의 몫은 적어진다. 그래서 “부자 하나에 세 동네 망한다”라는 속담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부자 하나가 생기면 동네 셋이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질적으론 가난하지만 마음이 부자인 경우가 더 많다. ‘행복한 유산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들 중 90% 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오히려 없을수록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부자에 대한 인식도 점차 좋아지고 있고 대기업들 역시 상생경영을 앞세우며 서민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뿌리 깊은 유교적 사상이 시대가 변화하면서 부자들이 진정한 존경의 대상으로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동철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의 70%가 부자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는 부자들이 탈세 등 불법적으로 재산을 증식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국내에서 정직하게 돈을 벌기란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그러나 그냥 돈만 많은 부자가 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사회공헌을 통해 기부를 하는 부자가 돼야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부자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많이 베푸는 사람이다’라는 말처럼 개인적인 기부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인다면 진정한 부자로서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