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선비정신 되살릴때

입력 2010-10-15 12:04 수정 2010-10-1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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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장겸 온라인뉴스부장
프랑스 북부 항구도시 칼레(Calais).화창한 날이면 도버해협 건너편 영국땅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 영국과 무역교류가 활발한 작은 항구도시다. 그보다는 조각가 로댕이 청동으로 조각한 ‘칼레의 시민’을 떠올릴 정도로 노블리스 오블리주 상징도시로 유명하다.

이 작은 도시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14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왕위계승 문제로 발발한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칼레시민들은 에드워드 3세가 이끄는 영국군을 맞아 11개월간 저항하다 결국 백기 투항하고 만다.

에드워드 3세는 시민들을 대학살하지 않는 대신 시민대표 6명이 맨발에 밧줄을 목에 걸고 오라는 항복조건을 내건다.

절대절명의 순간, 가장 먼저 손을 든 이가 칼레 최대 재력가인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였다.이어 법률가, 시장 등 귀족 5명이 뒤를 따랐다. 그러나 이들은 처형 직전 에드워드 3세가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받아들여 기적처럼 목숨을 구하게 된다. 이들 6인의 용기와 희생정신은 특권층의 도덕적 의무를 일컫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표상이 됐고 이를 형상화한 작품이 바로 ‘칼레의 시민’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전통은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형태의 기업정신으로 자리 잡으면서 꽃을 피운다. 앤드류 카네기, 록펠러, 포드,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미국의 부자들은 사업을 통해 쌓아온 부를 사회에 환원했다.이들의 솔선수범은 미국 부유층을 움직여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일조를 했다.

이 전통은 우리 선조들에게도 조선왕조 500년을 지켜오는 동안 선비정신을 통해 면면히 맥을 이어져 왔다.

대표적 사례가 1600년대초부터 300여년 동안 부와 명성을 유지한 경주 최부잣집. 최치원의 17대손인 최진립을 필두로 28대손인 최준까지 12대에 걸쳐 부자로서 존경 받아온 가문이다.‘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마라’‘사방 백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흉년에는 땅을 사지 말라’ 등 최부잣집 가훈은 존경받는 부(富)의 모범을 제시해 주고 있다.

현대사에선 1939년 한국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한 유한양행 창립자인 유일한 박사로 이어진다. 특히 1971년 그가 타계한 후 공개된 유언장을 통해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라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밝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최근에는 원로 영화배우 신영균씨가 한국 영화 및 예술 발전을 위해 500억원 상당의 재산을 기부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누구보다 검소한 삶을 살아 왔기에 선비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귀감이 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부 몰지각한 사회지도층의 도덕적해이는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직 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병역기피를 못하는게 바보인양 당연시하고 심지어 자녀 병역을 면제 받기 위해 원정 출산이 유행한지도 오래다. 어디 그뿐인가, 청문회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고위 공직자들의 위장 전입, 자녀를 특채시키려고 온갖 편법을 동원하는 고위층 외교관들, 스폰서 검사들... 다시금 거론하기 싫은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6명의 칼레 시민이 보여줬던 오블리스 노블리주는 결코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조선왕조 500년을 지켜온 선비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난이 닥치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고 앞장섰던 선조들의 선비정신.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큰 가르침으로 되새겨야 한다. 선비정신을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초일류 국가로 도약하는 정도(正道)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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