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司正'인가 '성역 없는 수사'인가

입력 2010-10-22 11:13 수정 2010-10-2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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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석 C&그룹 회장 금명 영장발부 결정...제일기획ㆍ신세계푸드ㆍGS리테일도 세무조사

재계가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도 전에 추위를 타기 시작했다. 한화그룹, 태광그룹에 이어 C&그룹까지 검찰의 사정(司正) 한파에 휩싸이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2~3곳의 대기업에 대해 추가 수사를 벌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재계는 최근 이어지고 있는 사정당국의 대 기업 수사 배경과 어디까지 확장될 것이냐를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21일 대검 중수부는 장교동에 있는 C&그룹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과 함께 임병석 C&그룹 회장을 전격 체포해 조사를 벌이는 등 압수수색 첫날부터 강도를 높이고 있다.

또 같은 날 삼성그룹 계열사인 제일기획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진행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제일기획 측은 “지난 2005년 세무조사를 받은 이후 5년 만에 실시되는 정기 세무조사”라며 의미를 축소했지만, 최근의 상황과 맞물리며 조사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검찰의 기업관련 수사는 크게 ‘비자금’과 ‘정·관계 로비’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한화그룹은 계열사인 한화증권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김승연 회장 등 오너 일가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다. 태광그룹 역시 이호진 회장이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차명주식을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했고, 이를 케이블방송 사업 확장을 위한 로비자금으로 사용했다는 혐의에 대해 조사 받고 있다.

C&그룹 임병석 회장도 C&우방, C&상선, C&중공업 등 C&그룹 계열 3개 상장사를 분식회계 등을 통해 고의로 상장 폐지시키는 방법으로 1000억 원 이상의 회삿돈을 개인적으로 착복했고, 이 중 일부를 해외로 빼돌린 것이 아니냐는 것이 조사 이유다.

검찰이 이 회장과 임 회장에 대한 정·관계 로비 의혹을 얼마나 밝혀내느냐에 따라 향후 사정의 강도와 범위도 정해질 것이라는 점에서 재계는 물론 정치권도 잔뜩 긴장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검찰을 포함한 사정당국의 강도 높은 기업수사에 대해 각종 ‘설(說)’들이 난무하고 있다.

우선 과거 정권에서 급성장한 기업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 태광그룹과 C&그룹의 경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 사세를 급격하게 확장했다.

검찰은 두 그룹이 정·관계 로비를 통하지 않고서는 급격하게 사세를 키우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해 이 부분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C&그룹은 주요 계열사들이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에 돌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검 중수부가 직접 수사에 나선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분석이 설득력이 강하다.

또 다음달 열리는 G20정상회의 전까지 국민의 시선을 붙잡기 위한 것이라는 정치적 해석도 나오고 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올 하반기부터 정부 고위층에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도덕성을 강조하면서 대기업에 대한 압박수위가 높아질 것은 예견됐던 일”이라며 “대검 중수부까지 나선 이상 사정당국의 전방위적 조사가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또 다른 기업의 관계자는 “검찰수사의 경우 검찰에서만 그치지 않아 기업인 입장에서는 매우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검찰이 진행하는 수사의 경우, 혐의가 사실로 확인되면 금융감독원(불법 금융거래), 공정거래위원회(공정거래위반), 국세청(세금탈루) 등 유관기관으로 관련자료가 이첩되기 때문에 해당 기업은 장기간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정부는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제도개선과 관리감독 강화를 통해 차명계좌나 비자금과 같은 악덕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세청은 최근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건설을 대상으로 특별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신세계푸드, GS리테일 등 주요 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세무조사도 실시하고 있다.

또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기업들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여행사들에게 저비용 항공사들과의 거래를 차단시킨다는 첩보를 입수, 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지는 등 대기업들에 대한 압박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공정위는 이와 함께 계열사 물량 몰아주기의 부당성을 판단할 수 있는 심사 지침을 12월에 개정할 계획이다. 이 지침에는 내부지원의 규모와 기준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20일 STX건설이 최근 매출과 이익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그룹 계열사들이 물량 몰아주기를 통한 부당지원혐의가 의심된다며 공정위에 조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모든 사정당국이 일제히,그것도 시나리오대로 움직인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이같은 기획사정 설에 대해 사정당국의 주장은 다르다. 불법과 탈법이 이뤄지는 곳에는 수사에 성역(城役)은 없다고 강조한다.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이 하반기 국정기조로 ‘공정사회’를 내세우면서 공직사회·권력층·잘 사는 사람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 검찰 수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지난달 대기업 대표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공정사회가 사정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 현재의 상황과는 배치된다”며 “자칫 지난 2004년 대선자금 수사와 같이 대규모의 수사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편 대기업 비리수사의 확산에 재계는 물론 ‘봐주기 식’ 조사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사정의 칼날이 관가로, 또 로비의혹이 확인될 경우 정치권으로까지 확산될 수 밖에 없다.

권력형 비리수사를 전담하던 대검 중수부가 재계에 칼끝을 겨눈 현재, 그 후폭풍이 어디까지 미칠 지 정·관·재계의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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