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1, 2등을 다투던 라이벌이 40여년이 지난 지금 증권업계에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바로 대우증권의 임기영 사장과 삼성증권의 박준현 사장의 얘기다.
두 사장의 기이한 인연은 증권업계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두 사람 모두 1953년 인천 출신으로 인천지역의 명문인 인천중학교와 제물포고등학교 동문이다. 당시 전교 1, 2등을 다투며 관포지교 같은 깊은 우정을 나눴으며 박 사장이 서울대 법학과로, 임 사장이 연세대 경제학과로 진학하면서 서로의 길이 갈라진다. 이후 이들의 인연은 박 사장이 1979년 삼성생명보험에, 임기영 사장이 미국 유학 뒤 1981년 한국장기신용은행에 입사하면서 금융권에서 재회했다.
기이한 인연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공교롭게도 박준현 사장이 2008년 6월9일 삼성증권 사장으로 취임한지 정확히 1년뒤인 2009년 6월9일 임기영 사장이 대우증권 사장에 취임했다. 두 사장은 예사롭지 않은 인연과 돈독한 우정으로 서로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증권업계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두 사람의 경영 스타일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박 사장이 안정적 조직 운영을 통해 기회를 잡는 다소 보수적이고 수비 성향의 CEO라면, 임 사장은 과감한 변화와 기회를 만드는 공격형 CEO라는 평가다.
이러한 차이는 개인적 성향이 주요 원인이겠지만 업계에서는 박 사장이 삼성생명 입사 후 재무기획팀장, 기획관리 부사장 등을 거치며 재무와 기획에 밝은 재무통으로 일해온 데 반해, 임 사장은 경력의 대부분을 IB 업무에 몸담아온 전형적인 투자전문가 출신으로 서로 경력 배경이 다른 탓으로 보고 있다.
공격형스타일 투자 전문가
지난해 4120억원 영업이익
증권업계 최고 실적 기록
특히 국내에는 전문가가 없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불모지로 알려져 있는 IB(투자은행) 분야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대우증권의 모기업인 산업은행이 지난해 9월 지주사로 전환한 뒤 기업금융투자은행으로 변신하고 있어 더욱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이다. 대우증권이 IB 부분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데 임 사장이 적임자라는 것이다. 실제로 임 사장은 외국계 금융사에서 근무했을 당시 IB에서 탁월한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삼성증권에 IB사업부장으로 스카우트됐던 전례가 있다.
다만 임 사장이 IBK투자증권에서 임기를 다 채우지 않았고 MB캠프의 경제 특보를 거쳤던 인물이란 점에서 취임 전후로 낙하산 인사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도 대우증권이 지난해 412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해 업계 최고의 실적을 기록하고 취임 당시보다 주가 및 시가총액이 증가하면서 잠잠해졌다.
또한 취임 초기 노조의 반발도 있었으나 업계 최고 증권사에 걸맞도록 비즈니스캐주얼데이(금요일 사복) 시행과 컴플라이언스 휴가, 피트니스센터 개설 등 복지부분을 개선하면서 직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임 사장이 쉽게 시행하기 어려운 일들을 단기간 폭발적인 추진력으로 시행한 탓에 몇십년에 걸쳐 형성된 조직문화가 바뀌고 있다.
임기영 사장은 외국계 회사에서 주로 근무를 했기 때문에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라고 알려져 있다. 이 기간 동안 쌓아놓은 인맥도 화려하다. KB금융지주 황영기 회장과 국민은행 강정원 행장이 같이 근무했던 대표적인 인사들이며 대우증권의 김성태 전임 사장과도 친분이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 임 사장은 직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편이며, IB 업무가 오랜 시간 인내심을 요하는 작업인만큼 치밀하고 참을성이 많은 성격인 것으로 알려진다.
임 사장은 취임 이후 1년도 안돼 총 비행거리만 지구 두 바퀴에 달하는 해외 출장을 통해 직접 발로 뛰는 글로벌 경영을 펼치고 있다. 임 사장은 취임 후 3개월 가량 업무 파악이 시간을 보내고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인 해외 영업 활동을 펼쳤다. 이에 해외 출장 비행거리만 7만9000km 이상으로 지구 두 바퀴를 돈 것과 비슷하고, 이러한 노력들이 실적으로 이어져 외국인 기관을 대상으로 한 한국 주식 세일즈 상대 시장점유율도 두 배 가량 증가했다.
지난달 임기영 사장은 대우증권 창립 40주년을 맞아 1위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주문하면서 대우증권의 다음 10년을 위한 비전을 제시했다. 임 사장은 대우증권이 향후 100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혁신’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보수적 성향의 재무·기획통
창사 이래 첫 100조원 돌파
서울~제주까지 전지점 방문
실제로 박 사장은 취임 후‘2011년 국내 압도적 1위’란 목표를 내세우며 ‘Create with you’라는 슬로건으로 기업이미지 쇄신을 추진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업계에서 박준현 사장은 의욕적이며 추진력이 강하다고 평가받는다. 실제로 2008년 6월 취임 후 지난해 연말까지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전 지점을 모두 돌았을 정도로 열정적이다. 삼성증권 관계자들 마저도 삼성증권의 역사상 아직까지 이런 경우는 없었다고 말할 정도이다.
또한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시해 부서들과 돌아가면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특히 삼성증권의 직원들이 이메일을 보내면 수시로 체크해 답장을 보내준다. 삼성증권이 일부 직원들에게 스마트폰을 보급한 이래로 일정 중에도 수시로 메일을 체크해 결제도 이메일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가 발생하면서 당시 파생상품 투자로 일부 증권사들이 큰 손실을 입었지만 박 사장이 있는 삼성증권은 관련 피해를 거의 보지 않았다. 박 사장의 철저한 리스크 관리 덕분이다. 박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리스크 관리에 최우선적으로 중점을 뒀으며 9월에는 선진형 리스크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본시장법에 대비한 종합리스크관리 체계도 완비했다.
박 사장은 이후 그의 경영스타일에 걸맞게 자산관리 名家인 삼성증권의 내실을 다지는데 주력했고,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난 9월말 지점 고객예탁 자산이 102조원을 기록하면서 창사 이래 처음으로 100조원 돌파의 주역이 됐다. 삼성증권의 지점 고객예탁자산은 최근 2년간 급격히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던 2009년 초 62조원에 불과했던 예탁 자산이 채 2년이 안돼 40조가 늘어났다.
삼성증권은 특히 올해 초 ‘강남제패’를 선언하며 강남권 지점을 대폭 확대하고 PB 100여명을 투입하는 등 고액자산가(HNW) 대상 영업을 강화했다. 그 결과 예탁 자산 1억원 이상 개인고객을 올 초 6만4900명에서 9월말 7만5805명으로 1만명 넘게 늘리는 데 성공했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예탁자산 30억원 이상 초고액자산가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아울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일임형 랩 등 주식 컨설팅기반 자산관리 경쟁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경쟁자와 격차를 더욱 벌인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