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으로 급한 불 껐지만…'뇌관'은 그대로

입력 2010-10-2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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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옥죄는 PF 부실대출

저축은행업계에 영예와 치욕을 모두 안겨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공적자금 수혈로 일단 위기를 모면했지만 부실의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부실PF 대출을 털어내고 건전성을 회복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저축은행들의 생사가 달려 있다.

◇ 부동산PF 대출 늘렸나?=현재 저축은행의 대출 가운데 부동산 PF대출은 절반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6월 발표한‘저축은행 PF대출’관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저축은행업계의 업종별 여신비중 가운데 부동산 관련 대출이 49.9%를 차지했다. 저축은행의 본업이었던 가계대출보다 부동산대출의 비중이 더 커진 이유는 수익성 때문이다.

지난 2003년 카드대란으로 가계 신용에 위기가 오자 저축은행업계가 취급했던 소액신용대출 중 대부분이 부실화되고 저축은행들은 신용대출을 기피하기 시작했다.당시 금융규제 완화로 시중 은행들이 서민금융에 진출하면서 영업 여건은 더욱 악화됐다.

저축은행업계가 유동성 위기로 곤란을 겪을 무렵 부동산 경기가 호황을 보이기 시작했다. 저금리 기조와 정부의 국토균형개발 계획,아파트 분양가 자율화 등 각종 건설 정책 확장에 힘입어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띄었다.

부동산 관련 대출이 틈새시장으로 부각되자,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에, 저축은행들은 부동산PF 대출에 뛰어 들었다. 여기에 부동산 불패 신화까지 더해져 대규모의 쏠림현상이 벌어졌다.

저축은행업계의 PF대출 규모는 지난 2005년 말 6조3000억원이었으나 2006년 말에는 11조6000억원으로 1년새 2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2007년 말에는 12조1000억원으로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2008년 말 11조5000억원, 지난해 말 11조8000억원, 올해 6월 말 11조9000억원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부동산PF 대출 건당 10% 이상의 높은 수익률에 힘입어 저축은행업계의 자산 규모도 급격히 불어났다. 지난 2005년 말 41조6000억원이던 자산 규모는 2006년 말 50조8000억원, 2007년 말 58조원, 2008년 말 69조2000억원, 지난해 82조3000억원, 올해 6월 말 86조6000억원으로 5년간 2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 효자에서 원수 된 PF 대출= 저축은행업계에‘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부동산 PF 대출은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PF 대출 채권의 수익성은 떨어지고 연체율은 높아졌다.

저축은행업계의 당기순이익은 2005년 회계연도(2005년7월~2006년6월)에 5758억원이었으나 2006년 회계연도 4320억원, 2007년 회계연도 3412억원, 2008년 회계연도 469억원으로 급감했다.

반면 PF대출의 연체율은 2005년 말 9.1%, 2006년 말 9.6%, 2007년 말 11.6%, 2008년 말 13.0%, 2009년 말 10.6%로 점점 높아졌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경제가 회복되면서 PF대출도 개선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최근 부동산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건설사 구조조정 등 악재가 겹치면서 PF 대출의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저축은행의 PF대출은 사업 허가가 나오기 전 단기적으로 차입하는 브리지론(bridge loan)인 경우가 많아 경기 침체시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저축은행업계는 2009년 회계연도에 530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 지난 3월 PF 대출 연체율이 13.7%에 육박하는 등 악화된 지표를 나타냈다.

이에 정부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저축은행 살리기에 나섰다. 지난 6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저축은행의 부실PF 채권을 3조8000억원 어치 매입했다. 지난 2008년 1조7000억원을 지원한 것까지 합치면 캠코에서만 총 5조5000억원의 공적자금을 쏟아 부은 것이다.

저축은행업계는 공적자금 수혈로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고 PF 대출은 골치 아픈 숙제가 됐다.

◇ 뇌관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 공적자금 지원으로도 PF대출의 정리가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캠코는 사후정산 조건부로 저축은행의 PF채권을 인수했다.‘사후정산’이란 매입대금을 우선 지급한 뒤 향후 실제로 회수된 금액을 기준으로 정산하는 방식을 말한다. 따라서 캠코가 PF채권을 매각한 금액이 매입대금보다 낮을 경우 손실분을 저축은행이 보전해 줘야 한다.

PF채권 매각 당시 발생한 손실은 즉시 회계에 반영하도록 했지만 차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손실액은 정산기간인 3년 안에 대손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계약 당시 예상한 추가 손실액은 1조3000억원. 연 평균 4300억원 이상의 충당금을 쌓아야 하지만 저축은행업계가 마이너스 수익을 보이는 현 상황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부동산 경기 침체가 계속될 경우 매각하지 않은 PF 채권에서도 추가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공적자금을 이용한 PF채권 정리는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라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 2008년 1차 지원 당시 정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장담했지만 이후 부실 채권은 추가로 발생했다.

또 지난해 말 기준 저축은행 PF 대출 가운데 금액 기준으로는 31.3%(3조9000억원), 사업장 기준으로는 40.5%(289개)가 ‘악화 우려’ 등급으로 분류됐다. 지난 2008년 6월 말 당시 금액 기준 12.4%, 사업장 기준 21%가 악화 우려였던 것보다 배로 늘어났다.

저축은행업계는 일단 급한 불을 껐지만 진짜 문제는 3년 후다. 그 안에 부실을 정리하고 건전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 강도 높은 자구책 마련해야=PF 대출 부실로 인해 규제는 강화되고 수익원은 줄어든 상황에서 저축은행업계가 어떤 자구책을 마련할 지가 관건이다. 대주주 증자나 후순위채 발행을 통해 자본을 확충하는 방안이 있지만 대주주 증자의 경우 필요한 액수 만큼 증자할 여력이 있는 주주가 드물고 후순위채 발행은 상반기에 이미 실시했으나 미달되는 곳도 있었다.

그 보다는 계열사 매각이나 인수·합병(M&A) 같은 구조조정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현재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저축은행이 20~30개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며 “대형사들은 몰라도 중·소형사들은 자본 확충에 어려움을 겪어 M&A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부동산 관련 대출이 전체 여신의 절반을 넘으면 안 된다는 ‘50% 룰’과 PF 대출은 30%를 넘을 수 없다는 ‘30% 룰’에 따라 새로운 수익원을 찾는 것 또한 과제다.

저축은행들은 본업이었던 소액신용대출을 늘리려고 하지만 부동산 대출과는 규모가 달라 예전과 같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때문에 ‘50% 룰’의 완화나 비과세예금의 취급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감독당국에서는 외면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어려운 상황이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다”며 “금융당국은 규제를 강화하는 만큼 업무 영역도 확대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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