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생활합니다”

입력 2010-10-27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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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와 긴장의 연속의 삶... 성과에 따르는 보상으로 위안

삼성그룹이 올해부터 임원들의 정서적 건전성을 점검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키로 했다. 임원들의 과도한 스트레스 여부를 사전에 파악해 심리치료 등을 실시하고 보다 나은 정신적 건강을 이룬 상태에서 업무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테스트는 △스트레스 내성 정도 △집중력 점검 △대인관계 스트레스 등의 항목으로 이뤄지며, 정상적인 수면 여부와 신경계통 치료제 복용 여부 등 현재 정신건강 상태뿐만 아니라 평소의 생활습관까지 전방위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이는 삼성의 임원들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반증이다.

삼성의 한 임원은 “삼성의 인사원칙인 ‘성과주의’가 가장 공정한 인사평가 방법인 줄은 알지만, 때론 과거보다 성과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중압감에 스트레스가 심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이에 본지는 삼성전자 K상무의 하루 일과를 통해 삼성 임원으로서의 삶이 어떤 지를 살펴봤다.

◇ 출장→회의→출장의 반복

K상무의 요즘 일상은 다람쥐 쳇바퀴도는 것처럼 ‘출장→회의→출장’의 연속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그동안 하드웨어 생산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생산 및 서비스업체로 탈바꿈하려는 시도에 따라 해당업무를 맡고 있는 K상무의 일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K상무는 “한 달에 적어도 절반 이상은 해외에 머물고 있다”며 “해외에 나가면 콘텐츠 프로바이더나 개발자 등과의 미팅이 연속적으로 잡혀있는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해외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 출장결과에 대한 결산과 보고, 또 회의가 이어져 정말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쓴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상시 K상무의 일과는 오전 7시께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출근과 함께 전날 올라온 보고서나 관련 서류 등을 검토하고 개발회의에 들어간다.

개발회의에서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삼성앱스의 운영방향 등을 논의하면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 작성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회의와 문서작성을 마치고 나면 그제서야 차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짬이 난다. 하지만 여유롭게 차 한잔의 여유 만 즐길 수는 없는 법. 차를 마시면서 경쟁사의 애플리케이션 보유현황을 웹서치를 통해 찾는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점심시간. 점심 식사는 주로 업무적 연관성이 있는 외부인사나 오전 회의가 점심시간까지 이어져 때로는 거르기도 한다.

점심이 지나면 또 다음 주에 있는 해외출장을 위해 사전 정보 수집과 해외 현지 일정 등을 체크해야 한다.

이처럼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부하직원 챙기기에 소홀할 수는 없는 것이 임원의 숙명(?)이다. K상무는 “실질적인 업무는 임원보다 밑에 있는 부하 직원들이 더 많이 한다”며 “이들과 호흡을 맞추지 못하면 업무성과는 기대할 수 없다”며 “부하직원 챙기기도 임원 업무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때로는 너무 일에 파묻혀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하지만 성과에 따른 보상이 확실하다보니 나중에 얻을 보상(금전적, 정신적) 생각을 하면 기운이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 ‘임원=고소득 비정규직’

국내 대부분의 기업 임원들이 그렇듯 삼성의 임원들도 많은 스트레스와 부담감 속에 살아간다. 삼성의 인사원칙인 ‘성과주의’가 그들에게는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소위 임원들을 ‘임시 직원’의 줄임말, ‘고소득 비정규직’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 임원으로 승진하게 되면 많은 혜택이 주어지지만 계약기간 중 성과를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에는 과감하게 퇴직시키는 사례도 나타난다.

삼성출신으로 현재는 다른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A임원은 “각 기업마다 고유의 기업문화가 있지만 삼성의 성과주의는 다른 기업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승진 경쟁에서도 지연, 학연 등이 철저히 배제되기 때문에 오로지 성과를 내기 위한 내부 경쟁도 치열한 편”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삼성전자의 이모 부사장이 투신자살한 사례가 있었다. 이 부사장의 유서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업무적 스트레스에 상당히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사장은 서울대, 카이스트, 스탠퍼드 대학 등 명문대학을 나온 재원으로 1992년부터 삼성전자에 몸을 담은 전형적인 ‘연구인력’이다.

입사 7년 만에 이사에 선임되고 삼성 내에서 최고 엔지니어에게 수여되는 ‘삼성 펠로우’에도 선정되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주위의 시샘어린 눈길을 받을 정도로 출세가도를 달려온 그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에는 ‘업무 성과’가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라는 것이 삼성 내·외부의 시각이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이 부사장은 삼성전자를 이끌어갈 차기 CEO 후보 중에 한 명으로 거론될 정도로 촉망받던 인재”라며 “하지만 일생을 연구에 바쳤던 사람이 사업부를 맡게 되면서 많은 정신적 고통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이 내세우는 ‘성과주의’가 양날의 칼로 작용한 셈이다.

국내 주요기업 임원들은 “성과를 올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압박감이 말할 수 없을 정도”라며 “하지만 많은 업무로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쉽지 않고, 사내 상담실도 다른 직원들의 눈치가 보여 이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자살한 이 부사장의 경우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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