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乳값 오르는데 '담합조사' 두려워

입력 2010-10-28 10:54 수정 2010-10-2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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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실패한 시장개입] ④ 울며 겨자먹기식 우유값 '뚝...뚝'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2일 제43회 국무회의가 끝난 뒤 갑자기 회의내용에도 없던 생활물가 얘기를 꺼냈다. 이 대통령은 배추파동 사태를 언급하며 생활물가 항목 52가지에 대해 품목별로 가격과 수급상황을 분석해 기본적이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생활물가 항목 52가지란 이른바 ‘MB물가지수’라고 불리는 쌀, 우유, 라면 등 52가지 주요 생필품을 말한다.

‘가격을 안정시키라’는 지시는 나라의 경제를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언이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가격을 내리라’는 강한 경고로 읽혀지는 대목이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4일 ‘생필품 가격 다 오른다? 우유값은 뚝뚝 떨어집니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업체들이 알아서(?) 우유값을 내렸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9월 서울유유가 1ℓ짜리 주요 제품 4종의 가격을 평균 9.9%(160~200원) 내린 것을 시작으로 남양유업이 9월17일부터 ‘맛있는 우유 GT 1ℓ’ 등 6종의 가격을 평균 10.1% 인하했고 매일유업과 빙그레도 이달 1일부터 각각 주요 품목에 대한 가격을 평균 13.9%와 9%씩 내렸다.

공정위는 우유값 외에도 주요 생필품 가격동향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가격 담합 등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불공정행위가 있는지 집중 감시해 나갈 계획이다.

정부의 가격인하 압박은 또 다른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미국과 독일, 영국, 일본, 중국 등 주요 10개국과 우유를 포함한 30개 품목의 가격 차이를 조사해 우리나라의 물가 실태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서민이 생활필수품을 국제시세보다 비싸게 살 이유가 없으며 비싸다면 대책을 세워 수급을 조정해 가격을 떨어뜨려야 한다고 지적한 것과 겹쳐진다.

그러나 공정위의 발표와 달리 우유업체들은 이번 가격인하가 한정된 기간에 적용되는 이벤트성 행사라는 입장이다. 서울우유의 경우 지난해 7월 도입된 제조일자 표시 1주년을 맞아 고객 이벤트 차원에서 가격을 내렸고 매일유업도 올해 말까지만 일시적으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서울우유를 비롯한 빅4(서울우유, 남양유업, 매일유업, 빙그레) 모두 아예 가격을 내린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이벤트성 행사”라며 정부의 우유값 가격인하 발표는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번 우유값 인하가 최근 공정위의 우유값 가격담합 조사와 얽혀 있다는데 있다. 공정위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을 내린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공정위는 2008년 7월 우유의 가공 전 단계인 원유 가격이 20%가량 오르면서 서울우유와 남양유업, 매일유업 3개사도 우유값을 20%씩 올리는 과정에서 3개 회사가 가격인상을 담합한 것으로 보고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올해 말 조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관련 업계가 정상참작을 받기 위해 우유값을 내린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우유값에서 70%정도를 차지하는 원유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우유값을 올리지 말라는 말은 손해를 감수하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정부가 MB물가에 대한 관리 차원에서 우유값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MB물가 52가지에는 식품업체들의 주력 상품인 라면, 밀가루, 빵, 과자, 소주, 식용유 등이 광범위하게 포함돼 있어 언제 정부의 ‘가격인하’의 표적이 될지 몰라 긴장하고 있다.

라면류도 이미 공정위의 조사를 받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4월 국회 정무위원회에 낸 ‘주요 현안보고’를 통해 생필품과 생계비 비중이 큰 서비스 등 서민생활 밀접 품목의 담합을 집중조사하고 있다며 라면, 커피, 면세유 등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라면의 경우는 이미 2008년에도 공정위가 물가안정 차원에서 농심과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 4개라면 제조업체들의 가격담합 여부를 조사한 바 있다. 라면을 생산하는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라면시장에 대한 2008년 조사에서 별 다른 담합행위 증거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조사도 흐지부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올 초에 밀가루값 인하에 따라 라면값을 인하했지만 팜유 등 나머지 부재료 가격이 상승하고 또 최근 밀가루값마저 오르고 있어 원가 상승 압박이 심각하지만 가격 인상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라면은 MB물가지수에도 포함돼 있고 우유시장이 전방위적인 정부의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가격 인상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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