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다시 떠오른 '관치의 악령'

입력 2010-11-03 13:43 수정 2010-11-0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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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자유시장주의를 비판하는‘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미 2004년‘사다리 걷어차기’, 2007년‘나쁜 사마리아인들’이란 책을 출간해 경제학자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장 교수는 이번에 출간한 책에서 신자유주의를 더욱 날카롭게 꼬집었다.

장 교수는 2008년 미국발(發) 세계금융 위기가 이 책을 쓰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세계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다소 과격한 표현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고삐풀린 자본주의’가 시장을 멍들게 하는 만큼, 더 잘 규제된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를 해야 한다는 게 장 교수가 이 책에서 내린 결론이다.

장 교수가 주장하는 자유시장주의의 폐해(弊害)와 괘(罫)를 달리 하지만 한국의 금융산업은‘관치금융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30여년간 칸막이식 금융제도로 시장을 나눠 놓고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못 하도록 철저하게 규제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은행 경영진에 대한 인사 간섭은 도를 넘었다. 분명히 일반주주로 구성된 시중은행 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정부가 주인인냥 은행장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심지어 정관계 인맥이 없으면 은행에서 일명 별(임원)을 달 수 없다는 게 20여년 전 은행권의 불문율 이었다.

정부가 관치금융에 대해 각성하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의 한파가 몰아치기 불과 몇 해 전이다. 1997년 초 김영삼 정부는 오랜 세월 관치금융으로 자생력을 잃어가는 한국 금융산업의 구조를 과감히 뜯어 고치겠다고 선언했다.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부실한 금융회사를 통폐합해 대형화를 유도하고 은행의 소유구조 개편, 진입장벽 철폐, 금리 자유화 등 과감한 개혁을 천명했다.

이처럼 김영삼 정부가 80~90년대 학계, 언론계, 국제금융기구 등의 강력한 요구에 불구하고 쉽사리 추진하지 못 했던‘금융개혁의 칼’을 빼든 것은 OECD 가입으로 금융시장 개방이란 현안 과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산업 전반에서 추진된 금융산업 구조개편은 대형화, 세계화 라는 명제를 던진 채 수년간 시장 개편이 이뤄져 왔다.

정부 주도의 금융개혁은 국내 금융회사들이 글로벌 금융회사들과의 시장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도록 경쟁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당면 과제가 있었던 만큼 수 십년간 이어져온‘관치의 습관’이 상당 부분 개선됐다. 물론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은행권의 대주주가 외국계로 바뀐 것도 정부가 금융시장에 압력을 행사할 수 없었던 요인중 하나였다.

지난 2개월여간 금융권 최대 이슈었던 신한금융 최고 경영진간 갈등이 라응찬 전 회장의 사퇴로 전환기를 맞고 있다. 내분의 주체인 3인 모두 퇴진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있었지만 라 전 회장만이‘눈물의 이임사’를 남긴 채 20여 년간 몸 담았던 신한금융 최고 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직 라 회장이 이사직을 유지하고 있고 신상훈 사장과 이백순 행장이 사내외 이사들을 등에 업고 권력에 대한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어 향후 내분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신한금융 사태가 조속히 마무리 되길 바라는 수 많은 신한금융 임직원들과 금융 전문가들은 향후 진행될 경영정상화 과정에서‘관치의 악령’만은 되살아 나지 않길 바라고 있다. 신한금융 주주들이 자체적으로 능력있는 인사를 선임해 신한의 정통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는 지켜봐 주고,지원해 줘야 한다.

장하준 교수는‘고삐풀린 자본주의’를 통제 하기 위해선 더 잘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 하지만 적어도‘관치인사’만큼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금융회사들이 공정 경쟁을 벌이고, 금융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선 합리적인 룰(규제)이 필요하지만 관치인사는 한국 금융산업의 체질을 약화시킨다는 20년전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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