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역사적으로 글로벌 사회·문화·경제를 좌우하는 명문 가문은 존재해왔다. 유럽의 로스차일드 가문이 글로벌 자본시장을 주무르듯 이른바 로열패밀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파워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를 이해하고 역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로열패밀리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13회에 걸쳐 글로벌 로열패밀리의 역사와 자본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을 분석한다)
록펠러가 산업계 대부라면 모건가는 미국을 비롯해 세계의 금융계를 장악, 돈줄의 주도권을 쥔 거대 금융 가문인 셈이다.
모건가문은 1838년 영국에서 시작됐다.
미국의 은행가 조지 피바디는 영국에서 금융업을 시작했고 자신의 후계자로 주니어스 스펜서 모건(1813∼1890)을 지목한다. 주니어스 스펜서 모건은 존 피어폰트 모건 1세(1837~1913)의 아버지다.
스펜서 모건은 회사를 뉴욕으로 이동해 미국 신흥시장 투자에 성공했다. 아버지 스펜서 모건이 죽은 후 존 피어폰트 모건 1세는 회사 이름을 JP모건으로 변경, 지금의 모건가를 탄생시켰다.
큰 변화도 있었다. 록펠러가문의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가 반트러스트법 제정으로 34개의 독립회사로 해산된 것처럼 모건가 역시 분리 과정을 거쳐야 했다.
1933년 여수신 전문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는 글래스-스티걸법이 제정된 것이다.
JP모건은 1935년 여수신 전문회사로 남게 되고 모건스탠리는 투자은행으로 분리 결정됐다. 모건스탠리는 JP모건의 인물들이 1935년 창립했고 첫해부터 24%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등 분리 된 후에도 이름값을 했다.
이후 JP모건은 2000년 체이스 맨해튼과 합병하면서 JP모건체이스로 다시 태어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융기업으로 남은 모건가는 미국의 현대사를 거치며 정재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JP모건은 19세기 후반 미국의 철도업을 비롯해 산업 전반에 자금조달을 하는 중심축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 미국에서 100여개에 달한 철도기업들 6개 기업으로 합병하는 것과 관련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흔들리는 미국의 금본위제도를 지키면서 3번의 도산 위기를 맞은 뉴욕정부를 구제할 정도로 모건가의 힘은 대단했다.
현재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1913년 12월 23일 성립한 연방준비법에 의해 시행됐다.
중앙은행이 존재하지 않았던 1913년까지 그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모건가다. 모건가는 투자은행이자 중앙은행으로 금융시스템을 책임지며 미국 경제의 중앙에 있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철강회사 US스틸 역시 모건가의 손을 거쳤다. US스틸은 카네기제강회사 등 10개 기업이 통합, 14억 달러의 자본금으로 탄생한 대기업이다.
이 굵직한 기업의 탄생에도 모건의 돈줄이 움직였다.
US스틸을 비롯해 미국 거대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 제너럴모터스, 듀폰의 설립을 주도한 것도 모건이었다.
모건가는 국가의 전쟁에도 관여했다.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 당시 JP모건은 프랑스 정부에 자금을 조달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는 영국과 프랑스 정부를 동시에 지원한다.
중국 작가 쑨홍빙은 저서 화폐전쟁을 통해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프랑스에 90억 달러를 지원한 금융재벌들이 독일이 승전할 경우 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 미국의 참전을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담보대출)로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도 모건가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JP모건은 위기를 기회로 돌리면서 미국 5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와 워싱턴뮤추얼 등을 인수하는 등 월가의 구원투수를 자처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은 메릴린치, 리먼브라더스 등 굵직한 금융기업들이 맥없이 허물어져가는 동안 JP모건은 전통 금융가의 명맥을 유지한 것이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의 부실 우려를 솔직히 인정하며 모럴헤저드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났다는 평도 받았다.
JP모건체이스의 자산 총액은 2조700억달러로 미국 금융업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월가의 승자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