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딴지부부 중국여행] 한겨울에 떠나는 티베트여행

입력 2010-11-22 13:34 수정 2010-11-2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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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을 싸하게 자극하는 찬바람이 좋다.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가을하늘. 노랗게 물든 거리의 은행나무가 살랑살랑 마음을 흔든다. 바람 한 점에 봄부터 제 입었던 옷을 아무런 미련 없이 벗어내는 나무를 보고 있노라니,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이 실감난다. 이맘때가 되면 내 가슴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티베트를 그리는 열병앓이.

2008년 12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였다. 나는 자의가 아닌, 순전히 ‘타의’로 베이징에서 티베트 라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해는 우리 부부에게 잔인했다. 정말이지 세상에 뜻대로 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상심의 그늘이 깊어져가는 나를 떠민 건 티베트에 먼저 다녀온 남편이었다. 경비는 통장의 잔고를 탈탈 털어서 마련했다. 그렇게 떠밀리듯, 도망치듯 나의 첫 티베트여행이 시작됐다.

중국 대륙을 동북에서 서남으로 횡단하는 46시간의 칭장열차 레이스. 절반을 나는 잠이 든 채로 지났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깊은 단잠은. 그리고 그 새벽에 보았던 여명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해발 4,000m가 넘는 고원에서 이글이글 불타오르듯 떠오르는 태양이 오로지 나를 향해 비추는 한줄기 희망 같았다. 낮이 되자 창밖으로 흐르는 대자연의 파노라마가 감동을 더했다. 청정한 하늘 아래 손을 뻗으면 곧 잡힐 것 같은 양떼구름, 새하얀 만년설, 가을 벼처럼 누렇게 물든 거대한 칭짱고원에 나는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열차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시내로 들어서자 짙은 어둠 속에서도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단 하나, 환하게 조명을 밝힌 포탈라궁이 서있다. 웅장하고 성스러운 자태에 나는 그만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 증상은 해발 3,650m의 고지대, 평지에서 이제 막 라싸에 도착한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느끼는 ‘고산증’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지만서도.

라싸에서 맞은 첫 아침은 포탈라궁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코라로 시작했다. 쉬지 않고 마니차를 돌리며 걷는 중년의 여인. 염주를 한 알 한 알 정성스레 돌리며 입으로는 끊임없이 육자진언을 외는 할아버지. 포탈라궁을 응시하며 오체투지를 하는 할머니까지. 티베트인에게 종교는 일상이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흐르는 것처럼, 매일 밥을 먹고 배설하는 생리적 현상과 다를 게 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

평지에서의 종종걸음을 버리고 나도 티베트인들을 따라 찬찬히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늦추자 시선이 여유로웠다. 그 시선을 따라서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났다. 여름이면 관광객으로 북적인다는 라싸의 거리는 농한기를 맞아 순례를 온 티베트인 순례자들로 가득했다. 남루한 차림의 그들이 보여주는 인자한 미소에 얼어붙었던 내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라싸, 시가체, 간체, 산남지방, 팅그리를 거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티베트에 머문 13일간 나는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겨울이라지만 한낮이면 봄처럼 따사로운 티베트의 햇살이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었다. 티클 하나 없이 시퍼런 티베트의 겨울하늘이 내 마음 속 깊이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티베트와 작별하고 돌아서는 내 발걸음이 처음으로 가벼웠다. 그해 겨울 티베트여행은 이듬해를 성실히 살아가는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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