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여풍당당>‘유통 롯데’ 신화 일군 그룹 안방마님

입력 2010-12-28 11:49 수정 2010-12-2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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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자 롯데쇼핑 총괄 사장

2009년 11월 롯데쇼핑 30주년 기념식이 열린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장기근속자 시상식에서 10년, 15년, 20년 근속자들에게 일일이 축하의 말을 건네던 신격호 회장의 장녀 신영자 사장(68)이 오히려 30년 근속 수상자로 장내에 이름이 불리어졌다. 재계 5위 롯데그룹 오너 2세가 30년 근속으로 회사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것도 이상하지만 신 사장이 호명되자 직원들이 직장 선배로서의 신 사장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은 모습도 감동적인 장면이었다는 후문이다.

신 사장의 30년 근속 수상은 사장이라는 타이틀에 비해 초라한 것일지 모르지만 롯데쇼핑의 상징적 회사인 오늘의 롯데백화점이 있기까지의 노고와 경영성과를 전 직원이 보는 앞에서 치하한 것이라 사뭇 의미가 남다르다.

◇롯데쇼핑과의 30년=현재 롯데그룹의 후계구도는 신동빈 부회장이 한국 롯데를, 형인 신동주 회장이 일본 롯데를 경영하는 것으로 마무리돼가고 있다. 장녀인 신영자 사장은 롯데계열사의 일부 지분만을 갖고 있을 뿐 실질적인 롯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롯데의 사회공헌사업 등에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그러나 신 사장은 동생, 즉 신동빈 부회장이 그룹에 합류하기 전인 1997년부터 롯데쇼핑 총괄 부사장에 올라 백화점 1위와 할인점, 슈퍼마켓 등의 사업을 본 궤도에 올려놓으며 재계로부터 오너 2세로서의 경영성과를 인정받았다. 물론 2006년 당시 롯데쇼핑 상장을 앞두고 신동빈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그해 1월 신 사장(당시 부사장)은 롯데쇼핑 등기임원에서 물러나며 후계 구도에서 배제되는 양상을 보였다. 2009년 4월 신 사장은 롯데쇼핑 사장과 롯데호텔 면세사업부 사장에 선임돼 ‘여왕의 귀환’을 알리는 듯 했지만 정리돼가던 후계구도에 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재계 일각의 해석에도 불구하고 예우차원에서 직급을 올려줬다는 롯데 관계자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빛을 잃었다.

신영자 사장은 30대 때부터 일찌감치 롯데그룹 계열사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1973년 5월 롯데호텔에 처음으로 입사했고, 1979년 롯데백화점 설립 당시부터 백화점으로 자리를 옮겨 롯데백화점 도약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0년대 롯데백화점이 국내 제1의 백화점으로서의 명성을 떨칠 때에 영업이사를 맡으며 일선 영업을 이끌었고, 이후 상품본부장과 총괄 부사장을 거쳐 2008년부터 총괄사장을 맡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있기까지 현재 CEO급 중에서는 이철우 대표이사 사장 다음으로 백화점에서 오랜 기간 근무해 롯데백화점 등 롯데그룹 유통의 역사와 함께해온 인물이다.

◇신영자 사장의 독립(?)과 자녀사랑=신 사장은 롯데와 오랜 기간 함께하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으면서도 후계 구도를 논할 때는 거의 배제됐다. 특히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570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만든 롯데삼동복지재단의 재단 이사장에 이름을 올리는 등 항상 그룹 경영 보다는 집안을 챙기는 모습이 더 부각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신 사장은 롯데백화점의 도약을 이끌고 롯데면세점을 면세점 업계 1위에 올려놓은 경영자의 면모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롯데면세점은 현재 대표이사가 있지만 신영자 사장이 면세점 부문을 맡고 있어 오너 일가로서의 기업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고 봐도 무관하다. 올해 AK 면세점을 인수해 호텔신라 면세점과의 격차를 두 배로 벌려놨으며, 글로벌 톱3 면세점으로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신 사장이 면세점 업무를 맡고 나서부터 롯데의 공세가 더욱 강해졌다”는 평가를 내릴 정도다.

면세점 뿐만 아니라 신 사장과 그의 자녀들의 지분이 많은 롯데 계열사의 경영 성과도 좋은 편이다. 이 때문에 신 사장은 롯데의 후계구도가 언론에 거론되거나 새 계열사가 추가될 때마다 롯데로부터의 독립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올 가을 명품 수입화장품 사업을 위한 롯데 계열사가 추가됐을 때 언론에서는 동생인 신동빈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부각되면서 신사장의 입지가 좁아지자 자식들과 함께 '홀로서기'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세 딸이 주요 주주로 참여했다는 점과 이 딸들이 최근 롯데호텔과 롯데면세점 등에서 근무하다 휴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설득력을 얻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 사장은 롯데제과의 계열사로 편입된 ‘시네마통상’의 28.3%로 개인 최대주주다. 신 사장의 딸들인 장혜선 7.6%, 장선윤 5.7%, 장정안 5.7%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시네마통상’의 주요 사업은 매점운영이다. ‘시네마통상’은 수도권을 제외한 롯데시네마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10곳에서 매점사업을 전담하고 있는 등 노른자위로 알려져있다.

신 사장의 장남이 운영하고 있는 회사도 수백억대의 매출을 올리며 성장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장재영씨는 자신이 임원으로 인쇄업을 하고 있는 ‘유니엘’과 국내 유명 면세점과 백화점에 명품 수입의류 도·소매업을 하는 ‘비엔에프통상’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이 두 회사는 장재영씨와 장혜선, 장선윤, 장정안 등 신 사장의 자녀들이 모두 등기이사로 등록돼있으면서도 연간 총 600억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등 신 사장 일가의 알짜배기 회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여자로서의 아쉬움=롯데그룹의 후계구도나 자식들과의 독립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신영자 사장은 언론에 어떤 입장도 내비치지 않았다.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건 아버지의 평소 뜻이기도 했지만 집안의 맏딸로서 가족을 걱정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신 사장은 맏딸로서 아버지 신격호 회장과 동주, 동빈을 바라보는 시선이 누구보다 애틋하다. 올해 서울대 임종원 교수가 쓴 ‘롯데와 신격호’라는 책에서 신 사장은 그동안 가족과 그룹 경영에 대한 숨겨놨던 속내를 털어놨다.

신 사장은 “원래 아버지가 하시고 싶어 했던 사업은 철강, 자동차, 가전사업과 같은 중공업 쪽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여건이 맞아떨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한국에 있는 아버지의 형제들이 아버지가 하시고자 했던 사업의 뜻을 잘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워요. 제가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다면 집안의 중심이 되어드려 아버지가 마음 아파하시지 않게 했을텐데, 하는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결국 맏딸로서 아버지 형제들의 잘못된 경영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후계자 겸 아들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여자의 한계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신영자 사장이 아들이었다면 롯데그룹의 후계구도 교통정리가 더 빨라지지 않았겠느냐”면서 “현재보다는 신 사장의 역할에 더 무게가 실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영자 사장, 그는 누구?=현재 롯데쇼핑과 롯데호텔 면세사업부 사장을 맡고 있는 신영자 사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맏딸이다. 이미 아버지를 따라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해, 1979년 롯데쇼핑의 창립멤버로 입사해 30 여년간 영업이사, 상품본부장, 총괄부사장을 차례로 역임했다.

롯데에서는 신 부사장이 유통에서 가장 중요한 구매와 영업파트를 모두 진두지휘하며 1980년대 롯데의 도약과 현재 업계 1위로서의 면모를 갖추기까지 1등공신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이런 공로로 롯데는 30주년 기념식에서 30년 근속 감사패를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신 사장은 2005년 명품관인 에비뉴엘 개점의 총책임을 맡아 명품 바잉 능력을 업계에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또한 AK면세점을 인수하며 면세점 경쟁에서도 호텔신라와의 격차를 벌여놓으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신 사장은 현재 롯데쇼핑 총괄 사장으로 이철우 대표이사와 함께 롯데 주력 유통산업을 책임지고 있다. 그룹 후계자로 낙점받은 동생 신동빈 부회장의 조언자 역할을 하며, 신 부회장이 챙기지 못하는 여러 부대 사업에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신 사장이 롯데그룹 차원에서 후계구도에서 벗어나 있긴 하지만 그룹의 안살림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며 아버지 신회장과 동생들(동주,동빈)의 가교 역할을 하며 안방마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사장은 가부장적 롯데가의 장녀로써 아버지를 제일 먼저 챙기는 효녀로도 잘 알려져있다. 신 사장은 임종원 서울대교수가 쓴 ‘롯데와 신격호’에서 “신격호 회장님은 저의 아버님이시지만 회사를 경영하는 모습이나 평소 생활하시는 모습 모두가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존경스럽다”면서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을 보인다.

경영자로서의 면모도 잊지 않고 있다. 신 사장은 지난해 30년 근속상을 수상하면서 “국내 1위를 넘어 세계적인 백화점으로 나아가려는 롯데쇼핑의 모습을 지켜봐달라”면서 트로피를 높게 치켜들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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