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흩날리던 28일 경북 경산시 삼성 볼파크.
일본프로야구에서 부활을 노리는 이승엽(오릭스 버펄로스·34)이 아침부터 설원을 홀로 뛰었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는 듯 이승엽은 “내년에는 (야구 인생을) 무조건 걸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성적이 기대를 밑돌면서 이맘때 이승엽의 얼굴에서는 항상 비장함이 묻어났지만 도리어 벼랑에 몰린 올해에는 마음을 비운 덕분인지 표정에 여유가 넘쳤다.
이승엽은 “‘야구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위기를 느꼈고 주변 상황에 등 떼밀려 내가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상상도 해봤다. 지금 은퇴한다면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등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며 올해를 되돌아봤다.
지난 2월 미야자키 스프링캠프에서 열린 요미우리 주력조 훈련에 제외됐던 이승엽은 올해 ‘주전은 어렵겠구나’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하라 다쓰노리 요미우리 감독은 가메이 요시유키, 다카하시 요시노부,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등 1루 수비가 가능한 자원을 풀가동하겠다며 이승엽을 압박했고 출전 기회를 사실상 박탈했다.
56경기에 출전해 고작 108번 타석에 섰고 타율 0.163에 홈런 5개, 11타점의 초라한 성적.
“감독이 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찬스를 잘 살렸다면 (요미우리에서) 밀려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승엽은 자책했지만 야구를 시작하고 처음 ‘대타’ 인생을 산 그에게 많은 것을 바란다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이승엽은 “가족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시즌 중 아내에게 ‘야구를 할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얘기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6살인 아들 은혁이 이제 막 야구를 알기 시작하면서 평범한 야구 선수가 아닌 대스타였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고 했다.
“(은퇴는)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접었다. 야구 잘하는 모습을 아들에게 꼭 보여주고 정상에 있을 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순간 은퇴한다는 목표로 새로 출발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승엽은 “내년에는 무조건 인생을 걸어야 한다. 야구가 제일 중요하다”면서 “박찬호(37) 선배와 한솥밥을 먹는데 팀이 이를 과도하게 한류 마케팅에 활용하고 야구에 피해가 갈 정도로 내게 홍보를 요구한다면 단호히 거부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경기장 대신 어쩔 수 없이 집에 머물면서 가정의 화목함과 단란함으로 야구 인생 최대 고비를 넘긴 이승엽. 이제는 타석에서 잃었던 웃음을 되찾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