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 등 경제부처 ‘3각편대’의 관치(官治)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물가를 잡을 수 있는 효과적 정책을 내놓지 못하다 보니 당장 눈 앞의 성과를 위해 기업의 팔을 비틀고, 시장질서를 뒤흐는 등 비정상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시장의 기능을 무시한 채 기업을 옥죄 물가를 잡다보면 투자위축-고용부진-경제 성장률 저하라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돼 오히려 경제를 멍들게 하는 꼴이 된다. 한치 앞도 못 보는 왜곡된 관치는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尹 재정 = 실제로 윤증현 재정부 장관이 9일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정유·통신산업 등 독과점적 성격이 강한 산업에 대한 경쟁 확산을 위한 시장구조 개선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며 가격 인하 압박을 하자 해당 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통신업계는 지난해 초당과금제로 전환하고, 데이터무제한상품제, 각종 결합상품제를 도입하는 등 지속적 가격 하락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인하 여력도 방안도 없다는 입장이다.
‘통신3사가 지난해 3조6000억원의 이익을 냈는데 이는 결국 소비자로부터 나온 이익’이란 윤 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도 ‘윤 장관의 논리대로 라면이나 통신업체보다 돈을 더 벌어들이고 있는 차업계에도 차 값 인하를 요구해야 한다’고 통신업계는 맞받아쳤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도 윤 장관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비싸다’는 발언과 관련, “우리나라 휘발유 가격은 OECD 평균 대비 낮은 가격”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대한민국의 경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현실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무조건적 가격 인하를 위해 현실과 동떨어진 요구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원칙훼손·편법 ‘김석동’ = 취임 당시부터 관치색을 분명히 드러낸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저축은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은행주도형 정리방식이 많은 무리수와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것.
은행이 저축은행 1~2곳을 인수한다고 무너지지는 않지만 저축은행 인수로 주가가 떨어지면 은행 주주들은 권익을 침해받는 결과가 된다.
금융당국이 저축은행의 ‘뱅크런(예금인출사태)’에 대비해 시중은행과 정책금융공사를 통해 3조원을 긴급 조성키로 한 것도 공적자금 투입을 피하기 위해 시중은행의 등을 떠미는 ‘편법’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금융계 한 관계자는 “금융지주사들이 덩치를 키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단순히 영업상 효율을 위해 저축은행을 인수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말 서민금융이 필요하다면 정부가 떠밀지 않아도 직접 인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도 모르는 ‘김동수’ = ‘백화점·대형마트 등의 판매수수료 공개’를 천명한 김동수 공정위원장에 대해서는 영업비밀에 대한 개념도 모른다는 비아냥거림마저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9일 가진 9개 대형 유통업체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에서 “백화점, 대형마트 등의 판매수수료를 공개해 경쟁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면서 “업태별·상품군별 수수료 수준을 올해 2분기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업에서는 판매수수료가 영업비밀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사항”이라며 “장관이나 공기업 사장들도 판공비 규모와 사용처를 공개하라”고 꼬집었다.
판매수수료는 백화점의 순매출에 해당하는데 ‘수수료’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백화점이 임대업자처럼 수수료만 챙기는 걸로 오해할 수 있다는 볼멘 소리도 나오고 있다.
수수료 공개기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수수료의 경우 서울과 지방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기준과 방법으로 공개하기는 어렵다는 것. 게다가 정부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수수료 공개를 위해 ‘대규모 소매업 거래의 공정화에 대한 법률’을 추진하는 등 상당한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신뢰 추락…결국 경제 멍든다” = 경제전문가들 역시 관치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쏟아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경제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5% 성장, 3% 물가 목표 달성을 위해 기업들에게 가격 인상요인이 있음에도 강압적으로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니 시장경제에 대한 철학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기업이 가격 인하 부담으로 투자를 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고용 규모도 줄어들게 되고, 고용이 늘어나지 않으면 경제성장도 어려워지게 된다”고 말했다.
대학 무역학과 한 교수는 “물가안정에 가장 효과적인 금리·환율 정책은 여전히 수출과 성장을 지원하는 쪽으로 가면서 공정위 등을 통해 시장가격을 억지로 눌러놓겠다는 것인데 이는 철저히 반시장적인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시장가격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을 노골화하면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엄청나게 훼손되고 억눌렸던 인플레 압력도 언젠가는 더 큰 파괴력으로 폭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