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정부가 주택경기 부양을 내세워 서민들의 가계대출을 부추긴 점도 한 몫했다. 그 결과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이 됐으며 ‘하우스 푸어(House Poor)’현상은 ‘가계부채의 뇌관’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우스 푸어는 금융 저축이 거의 없는 대신 과도한 대출로 고통을 받는 주택 소유자를 뜻한다.
◇주택담보대출 급증세= 오는 4월 결혼을 앞둔 박모씨는 신혼집을 구하면서 처음에 암담했다. 서울 양평동에 신혼집을 구하려했으나 최근 전세값이 급등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4평 주상복합아파트를 구하는데 전세값이 1억6000만원인 반면 구입시 1억8000만원으로 2000만원뿐이 차이가 나지 않다. 자신이 5년간 모은 돈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박씨는 은행을 찾았다. 결국 집을 구하기 위해 빚을 지기로 결정한 것이다.
작년 8월 말 시행된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조치로 전세값 등이 폭등하면서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은 전달에 비해 1조7000억원 증가했고 이후 2조2000억원(10월), 2조9000억원(11월) 등 큰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달엔 계절적 요인으로 증가세가 주춤했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이 살아날 조짐을 보이면서 주택담보대출이 다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은행권 가계대출에서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65.3%(1~11월 기준)로 금융위기 이전인 2008년(61.2%)보다 4.1%포인트 상승했다. 이 기간동안 가계대출 증가분에서 주택담보대출은 88.8%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총가계부채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896조9000억원으로 이미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금 압박을 받는 저소득층이 무섭게 뛰는 전·월세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저축액을 줄이고 대출을 늘리면서 가계부채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이 꾸준히 증가한 것은 DTI 규제 완화정책을 떠받치기 위해 한국은행이 지난해 9월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등 저금리를 고수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로 시중은행의 주댁담보대출 금리 역시 5%대의 비교적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일부 신용등급이 좋은 고객은 3~4%대의 저금리 대출도 가능했다.
◇한국판 서브프라임사태 덮칠수도=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증가하는데 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선진국의 가계부채가 조정국면에 진입한 반면, 한국의 가계부채는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07년 136%였던 금융부채 비율은 2008년 139%, 2009년 143%로 점차 커지고 있다. 금융부채 비율 143%는 영국, 호주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세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최근 대출금리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가계부채 폭발을 부채질하고 있는 요인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금리가 낮을 때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던 대출이자지만 금리가 오르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저소득층의 경우 빚 상환 불능에 빠질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시중금리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대출금리도 계속 오르고 있다. 양도성예금증서(CD) 91일물 금리는 17일 현재 3.15%를 기록했다. 연초 2.80% 수준에서 0.35%나 급등한 것이다.
코픽스(COFIX, 자금조달비용지수) 금리도 신규취급액 기준 3.47%, 잔액 기준 3.70%로 석 달 연속 상승했다. 특히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 금리는 3.09%로 4개월만에 0.36%나 올랐다. 은행들도 코픽스 금리 인상에 따라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와 연동한 대출 금리는 전달보다 0.14% 포인트 올렸다.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이 겪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며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와 맞물려 있어서 과거 2003년 신용카드 대란 때보다 파괴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계부채 적극적 관리 필요= 이은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는 것은 낮은 금리와 주가상승 등 외적 환경요인에 기인하고 있다”며 “하지만 향후 가계부채 관련 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가계부채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세계적으로 물가가 널뛰고 기준금리가 계속 오르는 데다 전·월세보증금까지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가계 부채가 한국경제의 숨통을 조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끼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의 연착륙 대책을 하루빨리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 연구원은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가계 채무 부담이 증가하는 것은 향후 주택시장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고정금리대출 비중을 늘리고 만기구조를 장기화하는 등 가계부채의 위험을 줄이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