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官]관치의 시대상…성장 주도에서 인위적 누르기까지

입력 2011-03-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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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획기 ‘선택과 집중’…근대화·수출입국 초석 마련

1960~1980년대 산업화 시대, 1990년대 민주화 시대, 그리고 오늘날의 글로벌 시대. 한국경제를 시대적으로 구분짓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서로 치열하게 대립했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의의로 공통점이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산업화 시대에는 경제성장을 위한 ‘관치’(官治)가 중심이었다. 민주화 시대에는 복지와 균형성장을 명분으로 내건 관치가 이뤄졌다. 오늘날 글로벌 시대도 리먼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를 계기로 ‘중도실용·친서민정책 현실화’를 위한 관치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산업화 시대건 민주화 시대건 글로벌 시대건 ‘관치’(官治)라는 점에선 동일선상에 서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관치와 이명박 정부가 부활시킨 관치를 같은 선상에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1990년대 이전의 관치가 ‘고성장’ 이란 시대적 명분과 목표를 바탕으로 한 선택이었다면 오늘날 관치는 정부가 내세운 ‘경제성장률 5%, 물가상승률 3%’라는 상충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억지로 팔을 꺾기 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960년부터 진행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대표적인 관치다. 경제성장이란 지상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택한 정부가 국가 자원을 인위적으로 분배했고 기업은 싸고 빠르게 많이 생산해서 수출을 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경제성장은 군사 작전처럼 일사불란하게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행됐고 특혜를 받은 기업은 덩치를 키울 수 있었다.

“기업들이 모든 계열사에 동일하게 지원하지 않는 것처럼 정부가 선별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경제발전 단계와 정책목표에 따라 지원방식이나 지원방향은 달라지게 돼 있으며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적절하게 선택과 집중을 하느냐이다.”(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하지만 관치로 성장해온 한국경제는 1990년 이후 변화의 바람을 겪는다. 1960년대 이후 수출 신장이라는 국가적 목적이 개별 기업의 성장과 일치했지만 신자유주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관치’라는 말로 대표되는 정부의 지휘가 이제는 각 기업에게 너무 작어져버린 옷이 됐던 것이다.

기업은 거추장스런 관치의 옷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국가주의라는 목표는 사적 이윤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려는 개별 기업의 목적과 상충되기 시작했고 또한 전문성 부문에서도 정부 관료의 지휘가 더는 기업 활동에 보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들에게 “현재 우리 정치와 관료행정 수준으로는 21세기를 준비할 수 없다”며 “관료행정은 3류 수준, 기업은 2류 수준으로 이대로 가다간 우리나라는 2류 국가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라며 관치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IMF 구제금융과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서 정부는 우월적 지위의 관치를 포기하는 대신 시장경제와 혼재된 기묘한 관치를 선보였다. 특히 과거와 달리 시장의 흐름에 맡겨두면서도 IMF 조기극복을 위한 기업 구조조정만은 강력히 정부가 개입했다. 시장경제를 옹호하면서 관치를 포기하는 듯 하면서도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기업회생 등 전형적인 관치를 보여주는 등 혼재된 시대상을 보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강력한 관치가 부활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과거 시대적 명분과 목표를 바탕으로 한 ‘노골적인’ 관치였다면 이번엔 ‘민간의 자율 결의’라고 그럴 듯하게 포장한 ‘신(新) 관치’가 등장했다. 물론 최근 다시 노골적인 관치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민간의 자율 결의라는 가면을 쓴 상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민간의 자율 결의’라는 명분 아래 이뤄진 관치의 대표적인 사례는 미소금융과 세종시 기업 유치였다”며 “미소금융 사업은 정부가 해야 할 서민지원 사업을 재정 한 푼 들이지 않고 ‘자진 출연’이라는 명분 아래 대기업과 금융권 돈으로 하는 ‘신관치’의 발명품이라 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정책실장 겸임) 등으로 이어지는 소위 모피아 출신 ‘올드보이’가 추진했거나 추진하는 정책들이 ‘관치’라는 것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오다 보니 문제점이 발생한다”면서 “민간경제는 커지고 자율성도 신장됐는데 현 정권의 경제팀 수장들은 아직 ‘관치의 향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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