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금융위기와 유럽발 재정위기를 거쳐 중동의 ‘재스민혁명’까지, 글로벌 경제는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다.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깊은 고찰과 비전으로 정책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석학들의 시각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 시대를 이끌고 있는 석학들의 비전을 분석하고 상아탑을 넘어 실물 경제의 정책을 주도하는 인물들의 경제이론과 그들의 삶을 조명한다.
<글 싣는 순서>
①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
②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③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④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⑥ 제프리 삭스 콜럼비아대 교수
⑦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⑧ 로버트 먼델 컬럼비아대 교수
⑨ 존 내쉬 프린스턴대 박사
⑩ 앨빈 토플러 뉴욕대 학사
⑪ 폴 새무얼슨 하버드대 박사(2009년 사망)
⑫ 오마에 겐이치 UCLA 교수
⑬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
⑭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아오야마학원대 교수
⑮ 노구치 유키오 와세다대 교수
닥터둠·카산드라·종말론자·예언자·퍼머베어·글로벌 유목민.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 교수의 수식어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온갖 어둠의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루비니 교수는 첫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2006년 9월 7일, 그는 세계적인 이코노미스트들이 모인 국제통화기금(IMF) 연단에서 두서없이 미국의 종말을 알리는 예언을 퍼부었다.
“위기가 몰려오고 있다. 향후 몇 개월, 몇 년 간 미국은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주택시장 붕괴와 오일쇼크, 소비심리의 가파른 추락으로 결국에는 깊은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다”
이어 그는 “주택 소유자들은 모기지 디폴트에 빠질 것이며, 이로 인해 전세계 수조엔 규모의 모기지담보부증권(MBS) 시장이 무너질 것이다. 글로벌 금융시스템은 휘청거리다가 정지될 것이다. 이 같은 사건들은 헤지펀드와 투자은행 및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같은 주요 금융기관들의 기능을 마비시키거나 파괴할 것이다”
그의 말도 안 되는 경고에 청중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
당시 미국의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은 모두 안정적이었고, 주택시장도 정체 국면이긴 했지만 경제는 여전히 성장세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퍼머베어(permabear, 영원한 비관론자)’의 무시무시한 경고는 맑은 하늘 아래서 대홍수가 닥칠 것을 대비해 방주를 짓는 구약성서의 노아와 같이 비춰졌을 터였다.
하지만 루비니의 예언은 현실로 드러났다.
연설이 있은 다음해인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터지면서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줬던 은행들이 연달아 파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7년 4월 미국 2위 모기지 업체인 뉴센추리파이낸셜에 이어 같은 해 8월 업계 10위인 AHMI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이 여파로 모기지 파생상품으로 기생하던 헤지펀드들도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주식시장은 급락했다. 실업률은 가파르게 상승했고 기축통화인 달러 가치는 추락했다.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발 신용경색은 세계 경제를 대공황 이래 최악의 사태로 몰아갔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Fed.)는 2007년 여름 서둘러 구제에 나섰다.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수백억 달러 규모의 MBS를 매입하는 등 비전통적인 개입으로 사태 수습에 진땀을 뺐다.
2007년 9월, 루비니는 또다시 IMF의 연단에 섰다. 그는 “현재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디폴트 사태는 앞으로 금융 시스템 전반을 오염시킬 것이다”고 두 번째 경고를 날렸다.
이 말에 더 이상 웃는 사람은 없었다.
프라카슈 룬가니 당시 IMF 이코노미스트는 “2006년에는 미친 사람 같았는데 2007년에 그가 다시 연단에 섰을 때는 예언자 같았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루비니의 경고는 멈추지 않았다.
2008년 2월, 당국의 조치로 월스트리트에선 이번 위기도 잘 넘길 것이라고 자기체면을 걸었지만 루비니는 “파산은행이 속출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6주 후 월스트리트의 5대 은행 중 하나였던 베어스턴스가 무너지면서 그의 놀라운 예지력에 월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의 놀라운 신통력은 학계에서만 통하던 ‘루비니’라는 이름을 세계경제 담론의 주역으로 만들었다.
미국 의회와 미국 외교협회, 세계경제포럼(WEF) 등 권위 있는 기관들은 그의 신통력을 확인하기 위해 회동이 있을 때마다 초청했다.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 회의는 물론이었다.
루비니가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면서 일각에서는 그의 신통력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옳은 시간을 가리킨다. 계속 비관론을 고수하다 보니 어쩌다 맞은 것 아닌가”하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의문은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풀어줬다.
2008년 서머스 장관과 점심식사를 함께할 기회를 가진 루비니는 “나는 현실주의자일 뿐 비관적인 사람이 아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통찰력을 갖고 제3자적 입장에서 방심하고 있는 사람들을 일깨우고 고정관념을 깨는 역할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그의 놀라운 예지력도 하루 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20년간 신흥경제국을 연구한 결과 공통적인 취약점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20년간 신흥경제국들이 연쇄적으로 위기에 처했는데 분석해보니 위기가 닥치기 전 이들 국가는 엄청난 경상적자를 기록, 버는 돈보다 훨씬 많을 돈을 쓰고, 모자라는 돈은 외국에서 빌려 썼다는 것. 또 금융권에 대한 규제가 허술해 빌리는 쪽이나 빌려 주는 쪽 모두에 맹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종말론도 여기서 나왔다. 신흥경제의 위기를 분석한 후 다음 차례를 꼽아보니 미국이라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 미국은 가장 큰 신흥경제와 같은 모양새였다”며 “2004년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6000억달러에 달한 것이 거슬려 연구를 시작했고, 연준이 금리를 거의 제로로 내린 2003년 이후 불기 시작한 차입 열풍을 연구하자 주택시장의 거품이 포착, 결국 거품이 터질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