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이 확정되고 동료 선수들로부터 맥주세례를 받던 심현화(22.요진건설)는 결국 눈물을 쏟아냈다. 어머니 이승실씨가 달려와 안아줬을 때는 눈물샘이 펑펑 솟구쳤다.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GT) 개막전 롯데마트여자오픈(총상금 1억원) 우승자 심현화는 왜 그렇게 설움이 복받쳤을까. 롯데스카이힐 제주CC에서 최종일 전날 선두였던 양수진(21.넵스)에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심현화는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골프를 포기해야 하나’ 하고 생각했던 일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시작인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프로골퍼의 고질병인 ‘입스(yips)’현상때문이었다.
168cm의 탄력적인 몸매를 지닌 심현화는 어린 시절부터 수영과 볼링은 물론 유도, 합기도까지 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다. 남다른 운동 신경을 자랑하던 말괄량이 소녀였던 셈. 모친의 권유로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골프클럽을 잡았다. 시작한지 2년만에 MBC 한국청소년골프선수권대회에서 첫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거둔 승수가 무려 8승.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던 2001년 주니어상비군에 발탁된데이어 국가대표 주니어상비군을 2005년까지 지냈다.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았다.
그러다 어려움이 닥친 것은 지난 2006년. 국가대표 선발이 좌절돼 도하아시안게임 금메달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해 여고생으로 세미프로테스트에 합격했다. 그런데 프로데뷔를 하자마자 문제의 ‘드라이버 입스’가 찾아온 것이다. 비거리를 늘리기위해 스윙을 바꾼 것이 화근이 됐다. 이때부터 클럽만 봐도 겁이 났다. 티샷은 캐디백에 들어있는 볼이 다 떨어질 정도로 OB(아웃 오브 바운스)가 났다.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그토록 좋았던 골프가 증오의 대상으로 변했다. 부모와 의논 끝에 미국으로 1년간 어학연수를 떠났다. 이때 6개월간 클럽을 손에서 놓았다. 함께 상비군을 지낸 동료 선수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우승을 하고 있는데 홀로 방황한 것이다.
그러나 골프를 잊을수 없었다. ‘죽기살기로’ 다시하기로 마음을 다지며 2008년 귀국했다. 하지만 2부 투어 시드전에서 탈락했다. 3부 투어로 방향을 선회했다. 물론 드라이버 입스를 치료하기위해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물론 골프 기본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나갔다. 그러면서 3부투어에서 1승을 포함해 ‘톱10’에 8회나 들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KLPGA 정회원으로 입회했다. 2009년부터 KLPGA정규투어에서 상금랭킹 23위에 올랐으나 드라이버 페어웨이 안착률은 57.62%로 여전히 불안했다.
지난해 샷 감각이 안정되면서 평균드라이버가 240.19야드에 페어웨이 인착률은 75.86%로 높아졌다. 하지만 상위권 선수들의 페어웨이 안착률이 80%가 넘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개선할 부분이 남아 있다. 지난 3년간 눈물겨운 노력으로 값진 우승컵을 손에 쥔 심현화는 상금 1억원과 함께 창단 2년만에 우승한 기념으로 요진건설로부터 벤츠 승용차도 선물로 받았다.
한편 강민주(21)는 합계 10언더파 278타로 단독 2위에 올랐고 양수진은 합계 9언더파 279타로 임지나(24.한화), 정재은(22.KB금융그룹), 정연주(19.CJ오쇼핑) 등과 함께 공동 3위에 그쳤다. 지난해 KLGT 상금왕 이보미(23)는 대회 2라운드까지 공동 58위에 오르며 간신히 컷을 통과, 이틀 동안 무려 12타를 줄이는 뒷심을 발휘해 공동 3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입스(yips)란
사전적 의미는 골프에서 퍼팅 등 플레이를 할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몹시 불안해하는 증세. 호흡이 빨라지며 손에 가벼운 경련이 일어나 실수를 한다.
이때문에 심리적 불안이 주원인이 돼 샷의 실패로 나타나는 입스현상은 퍼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린 주위에서 하는 쇼트게임에서도 나타난다. 최근에는 드라이버까지 확산됐다.
쇼트게임전문 교습가인 데이브 펠츠(미국)는 “칩샷을 할때 자주 뒤땅을 치고 러프가 깊은데도 퍼터사용을 고집하거나 그린프린지에서조차 클럽헤드를 뒤로 가져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칩샷 입스가 왔다는 증거다”고 말했다.
드라이버 입스의 대표적인 선수는 통산 5승의 조호상(55)과 통산 8승의 김대섭(30)이다. 80년대 대표주자 조호상은 드라이버만 잡으면 덜덜 떨리고 100야드로 나가지 않는 등 ‘티샷 중병’에 걸려 결국 토너먼트 생활을 접어야 했다. 매년 최소 1승을 거둔 김대섭은 2006년 드라이버 입스가 찾아왔다. 김대섭은 “드라이버가 맞지 않아 티잉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고 말했다.결국 김대섭은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2006년에 출전한 16개 대회 중 8개 대회에서 컷오프되는 수모를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