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를 낸 일본 도쿄전력의 실책을 둘러싼 후폭풍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도쿄전력은 19일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의 배상금 마련을 위해 수천 명의 구조조정을 단행키로 결정한 가운데 도쿄전력의 현직 임원과 퇴직자들이 집권 시절 자민당에 수천 만엔대의 정치자금을 기부해 파문이 일고 있다. 여기다 일본의 3대 금융그룹은 도쿄전력의 주가 폭락으로 큰 낭패를 봤다.
20일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앞으로 5년간 자연감소분을 포함해 수천 명의 인력을 줄이고 급여를 삭감하는 방안을 노동조합과 협의하고 있다.
도쿄전력은 매년 1000∼1500명이 퇴직하고, 1000명의 신입 사원을 채용해 왔으나 앞으로는 신입사원 채용을 줄여 퇴직으로 인한 결원을 충원하지 않을 계획이다. 지난해 말 현재 도쿄전력의 직원은 3만6733명이었다.
직원 급여는 연간 10% 정도를 삭감할 예정으로, 도쿄전력은 인력 감축과 급여 삭감 등을 통해 연간 480억엔 정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쿄전력은 인건비 절감을 포함해 부동산과 주식 등의 자산 매각으로 4000억엔 가량의 자금을 확보한다는 방침이지만 대량 감원에 따른 반발은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도쿄전력의 실책은 은행권으로도 불똥이 튀었다. 미쓰비시UFJ와 미쓰이스미토모, 미즈호 등 3대 금융그룹은 19일 도쿄전력의 주가 폭락으로 2010 회계연도에 총 1500억엔의 손실을 냈다고 밝혔다.
미쓰비시UFJ는 300억엔, 미즈호는 500억엔, 미쓰이스미토모는 700억엔이 넘는 손실을 각각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전력의 주가는 대지진 발생 당일인 3월11일 2121엔이었으나 원전 사태가 갈수록 악화하면서 3월31일에는 466엔으로 주저앉았다.
도쿄전력의 주주는 개인과 기업을 포함해 작년 9월말 현재 60만명에 이른다. 요미우리신문은 주주 가운데는 대형 건설업체와 전기업체, 지방은행 등이 포함돼 있어 기업 실적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도쿄전력 관계자들이 2007~2009년 3년간 자민당에 2000만엔이 넘는 정치 자금을 기부한 사실이 포착돼 파문이 일고 있다.
마이니치 신문은 20일 자민당의 정치자금 관리단체인 ‘국민정치협회’ 자료를 인용해, 도쿄전력의 70명이 넘는 간부와 임원이 자민당에 600~700만엔의 정치자금을 기부했고, 산하 간덴코는 1380만엔을 건냈다고 보도했다.
낙하산 인사의 온상으로 지탄받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과의 유착관계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막대한 공권력을 행사해온 도쿄전력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지고 있다.
시미즈 마사타카 도쿄전력 사장은 1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 증언에서 “1974년 이후 정치자금을 기부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자료에서는 부사장 시절인 2007년에 24만엔, 사장으로 승진한 2008년부터는 매년 30만엔을 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는 도쿄전력이 로비를 위해 간부들을 동원, 자민당에 조직적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원전 사고를 계기로 도쿄전력의 어두운 부분들이 낱낱이 발가벗겨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와이 도모아키 니혼대학 법학부 교수는 “표면적으로는 정치권에 기부하지 않는 전력업체의 관행”이라며 “조직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도쿄전력에 대한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원전의 쓰나미 지침을 마련한 토목학회 위원 절반이 전력 관계자인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력업체와 연구기관이 밀착돼 객관적인 평가가 나오겠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토목학회가 2002년 마련한 지침에 근거해 도쿄전력이 예상한 쓰나미는 최대 5.4~5.7m였지만 실제 쓰나미는 최대 14m로 추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