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재보선을 6일 앞둔 21일 경남 김해乙. 정국의 지각변동 진앙지로 꼽히고 있지만 정작 현지 분위기는 차분했다. 간혹 보이는 선거 벽보만 선거일을 알리고 있었다. 그러나 물밑 선거전은 치열하다는 게 현지 참모들의 전언이다.
이날 하루 취재진은 김해을 장유면을 중심으로 진영읍, 선지리, 내·외동 등 김해乙 곳곳을 누비는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와 야권 단일후보인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와 동행취재를 통해 지역 분위기를 확인해봤다. 여의도 정가의 예측과 달리 ‘박빙’의 대결이 전개되고 있었다. 선거 초반 수세에 몰렸던 김 후보는 최근 상승세에 자신감이 충만했고, 여유를 보였던 이 후보는 초초함이 엿보였다.
21일 오전 11시, 김해시 진영읍 진영복지회관에 나타난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는 점심식사 중인 노인들을 향해 넙죽 큰절부터 올렸다. 그를 단박에 알아본 노인들은 “아이고, 우리 지사가 왔다”며 품에 안겼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도 당 지원을 거부하고 ‘나홀로 선거전’에 뛰어든 김 후보.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통해 큰 실망을 드린 것에 반성하고 이해를 구하는 의미”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와 손을 맞잡은 노인들은 “한 번 실수는 할 수 있다. 앞으로 잘하라”면서 등을 토닥였다.
김 후보는 이날 노무현의 생가가 위치한 봉하마을 인근 진영읍을 집중 공략했다. 10분 단위로 일정을 쪼개 복지회관, 교회 등을 숨 가쁘게 방문했다. 현장에 있던 참모는 “한나라당에겐 어려운 지역인 만큼 방문이 뜸했지만, 남은 선거기간 동안 이 지역 표심에 호소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김 후보는 ‘노풍(盧風)’을 실감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노무현 정신은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은 지탄받아야 한다”며 “나부터 개인의 유불리나 지역을 따지지 않는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말했다. 노풍 차단보다는 ‘노심 끌어안기’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후보의 동선이 ‘아줌마 표심’에 맞춰진 것도 눈에 띈다. “20, 30대 젊은 유권자들은 박근혜가 지원유세를 와도 꿈쩍도 안할 것”(장유면 A식당 주인) 이라는 지역 민심을 감안하면, 훤칠한 키와 호감형 외모를 지닌 이 후보가 파고들 수 있는 틈새시장은 주부층이다.
김 후보는 이날 오전 장유면에 위치한 찜질방, 피트니스 센터 등을 돌았다. 에어로빅에 한창이던 30여명의 주부들은 그가 들어서자 함성을 지르며 반겼다. 김 후보는 “건강 미녀들을 만나 반갑다. 장유면에 문화시설을 늘려 아름다운 미녀들이 더 많이 나오도록 하겠다”며 화답했다.
경남도지사 경력을 무기로 김해 구석구석을 누비는 김 후보의 인사 소리는 쩌렁쩌렁했고, 악수를 건네는 손에도 힘이 잔뜩 실렸다. 하지만 부정적 시각도 여전했다. 50대 유권자(식당 운영)는 “자성의 시간이 너무 짧았다”며 “아직 김 후보를 보면 박연차 사건이 먼저 떠오른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6시 30분, 김해 창원터널 입구. 출근길에 오른 한 운전자가 노란색 점퍼 차림의 야권 이봉수 후보를 경적 소리로 응원했다. 2차선 도로를 꽉 매운 차량을 향해 이 후보는 춤을 추는 듯한 ‘몸 인사’를 건넸다. 길가엔 노무현의 상징인 ‘노란색 자전거’가 소품으로 세워졌다.
7시 40분, 출근길 유세에 유시민 대표가 합류했다. 감기몸살을 앓고 있다는 유 대표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그간 선거의 고생스러움을 방증했다. 하지만 이 후보와 함께 도로로 나서자 유 대표는 함박웃음으로 출근길 유권자들을 맞았다. 그가 자신의 목에 “투표 안 해주시면 집니다”라고 쓰인 노란 팻말을 걸면서 시민들의 화답이 훨씬 잦아졌다.
출근길 일부 차량들은 차창을 내려 “화이팅”을 외치거나 손을 흔들었다. 대부분이 ‘노무현 향수’에 젖어있는 30~40대 젊은층이었다. 출근길 인사에 노란색 풍선을 준비한 민주노동당원도 동행했다.
최근 김태호 후보의 상승세가 감지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 대표는 “김 후보는 한나라당으로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표만 얻을 것”이라고 자신하며 “그렇다고 안심할 순 없다. 지지가 투표로 이어지지 않으면 진다. 투표율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해乙 선거 운동은 ‘이봉수’ ‘유시민’ 두 갈래로 나눠 진행됐다. 이 후보가 골목길을 누비며 일대일 대면 접촉에 집중하는 한편, 유 대표는 공식유세에 힘을 쏟고 있다.
이날 오후 3시, 장유면 율하신도시 아파트촌. 두 시간 만에 벌써 8번째 ‘게릴라 유세’ 중이던 유 대표는 “전직 대통령을 핍박하고 죄 없는 전직 총리에게 올가미를 씌운 이명박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가던 길을 멈추고 카메라를 꺼내들거나 연설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곳곳에 보였다. ‘유시민의 선거’라는 말이 실감나는 현장이었다.
이 후보의 사정은 좀 달랐다. 장유면 아파트촌 방문에 이어 불지사, 대법륜사 등을 홀로 찾은 이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지만 대부분 그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다. 악수를 외면하는 사람도 있었다. “야4당 단일후보 이봉수입니다”라고 소개해야만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