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올해 말로 유엔 총장 선거가 예정돼 있지만 아직 연임 여부와 관련해 스스로 공식 입장을 밝힌 바가 없으며 향후 상황을 봐 결정할 것이라고 22일 말했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반 총장은 이날 숙소인 모스크바 시내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주러 한국특파원단과 한 간담회에서 "임기 5년째로 올해가 마지막 해인 것은 맞지만 연임 여부에 대해 아직 (공식) 입장을 발표한 바가 없다"며 "이번 러시아 방문도 이 문제가 주 목적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 총장은 "올해 초부터 중동 민주화 사태가 발생해 리비아와 코트디부아르 사태로 이어지고 있으며, 일본 지진과 원전 사고 등 워낙 일이 많이 생겨 몹시 바쁘다"며 "연임 문제는 여러 상황을 보고 난 뒤 입장을 결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유엔과 국제 외교가에선 반 총장이 연임 도전에 나설 것이며, 적절한 시기에 공식 발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 총장은 이번 방문에서는 리비아 사태와 관련한 유엔 안보리 결의 1970호와 1973호를 이행하기 위해 안보리 상임 이사국인 러시아와 입장을 조율하고 더불어 한반도 문제 등 국제현안을 주로 논의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21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반 총장은 이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등을 만날 예정이다. 블라미디르 푸틴 총리와의 면담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 총장은 그동안 유엔 수장으로서 국제사회의 긴급한 대북한 식량 지원과 북핵 6자회담 조속 재개 등을 촉구해온 것이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 다소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남북한 양자 관계의 측면과 (국제 대표기구인) 유엔 수장으로서의 입장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식량기구(WFP)와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아동기금(UNICEF) 등 3개 기관의 공동 조사 보고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사정, 특히 영유아의 영양상태가 우려스런 수준에 있으나 국제사회의 지원은 급감했다"며 "유엔 수장으로서 다니는 나라마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남북 관계는 당사자들이 직접 해결해야 하고, 6자회담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입장도 존종하지만 인도적 지원 문제는 북한뿐 아니라 고통을 겪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25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 사고 현장을 방문한 뒤 러시아에 온 반 총장은 "직접 눈으로 보니 원전 사고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한 안전 수칙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와 관련해 반 총장은 "오는 9월 열릴 유엔 총회 정상급 회의에서 원자력 안전 수칙 강화 문제, 원자력 기술의 잘못된 이전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등을 논의할 계획이며, 이에 앞서 6월 하순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될 국제원자력기구(IAEA) 각료급 회의에서도 이 문제들에 대한 긴밀한 토의가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 총장은 그러면서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이 기후 변화 대응 등의 필요에서 인류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남아있을 것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어떻게 원자력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