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섬이 국내 증시에서 매매정지를 당하기 하루 전 기관들이 사전정보를 입수해 투매에 나서면서 피해가 개인투자자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개인들이 피해를 입는 동안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보인 상장주관사 대우증권과 한국거래소의 늦장대응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증권예탁증권(DR) 방식으로 국내에 상장된 중국고섬의 매매가 정지된 것은 지난 3월22일. 불투명한 회계처리 문제로 싱가포르 거래소에 상장된 원주가 매매정지됐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고섬은 경영진이 총 사퇴하고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으며 특별감사인을 선임해 회사 재무상태에 대해 집중점검 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거래정지 조치가 내려지기 하루 전인 3월21일 중국 섬유업체를 자회사로 둔 싱가포르 소재 지주회사인 중국고섬은 중국 상하이에서 기업설명회를 열였다. 중국고섬 공장의 탐방 형식으로 진행된 이 자리에는 국내 증시 상장주관사인 대우증권을 비롯한 국내 6∼7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이날 중국고섬의 주가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19일 당시 참석자들에 따르면 그날 오후 국내 기관들이 싱가포르 증시에서 중국고섬의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업설명회장에 전하면서 행사장의 분위기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결국 이날 저녁 중국고섬은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매매정지를 요청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기관들은 3월22일 국내 장이 열리자마자 발 빠르게 174만8000주를 매도했고 외국인도 3만8000주를 내던지면서 중국고섬의 주가는 하한가까지 떨어졌다. 반면 사전정보가 전혀 없던 개인들은 176만9000주를 쓸어담았다. 거래소의 정보력 부족으로 중국고섬의 거래정지가 이날 오전 10시에나 이뤄지면서 그 피해를 개인투자자들이 고스란히 뒤집어쓴 것.
거래소는 매매정지 조치는 상장기업의 공시에 따라 취해지는 것이라며 공시를 늦게 올린 중국고섬에 책임을 돌렸지만 사전조치 미흡으로 개인투자자의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거래소의 정보력이 기관들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장 주관사인 대우증권도 중국고섬의 싱가포르 증시 폭락을 알고도 기관들의 투매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거래소에 신속히 중국고섬 문제를 알리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상장 주관사로서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를 막을 책임을 져버렸다는 지적이다.
한편 중국고섬이 지난해와 올해 1분기 재무제표 공시를 다음달 말로 연기하는 등 거래정지가 장기화할 조짐이 나타나자 개인투자자들이 집단 대응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한 소액주주는 “기관들은 정보를 독점하고 개인투자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주식 거래라면 말 그대로 ‘불공정거래’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리며 “집단 법적 대응도 불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