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 선언은 언제 할 것이냐는 질문에 “국민들이 신임하면 그때 하겠다”며 이어진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의 반문이다. 감춰뒀던 질문이었기에 “여쭤보고 싶은 거였다”고 하자 “괜찮지 않아요? 나?”라며 또 다시 반문이 되돌아왔다.
그의 토로에서 엿보이듯 낮은 지지도는 아킬레스건이자 대선 본선행을 위해 극복해야 할 최대과제로 평가된다. 그러면서 제3후보로 주목받고 있는 김두관 경남지사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외곽에만 머물지 말고 후보군에 들어와 경쟁하자는 것이다.
그는 특히 ‘박근혜 대세론’ 관련해 “현 지지율은 인기도에 불과하다”며 “인기가 실제 표로 연결될지에 대해선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겁낼 상대가 아니다. 한나라당 후보가 되면 제일 쉬운 상대”라고까지 했다.
또 4.27 분당 승리를 통해 야권 대선주자 입지를 굳힌 손학규 대표를 향해선 “내가 말하지 않아도 국민이 다 알지 않느냐”며 “정체성이란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작심한 듯 말을 꺼냈다. 집요한 질문 끝에 얻어낸 그의 속내였다. 그러면서 “정당의 정체성은 역사와 전통의 산물인 만큼 자신을 당에다 맞춰야 한다”고 뼈있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정세균 최고위원과의 인터뷰는 1일 국회 의원회관에 위치한 그의 방에서 2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이명박 정권 들어와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했다. 민주주의는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다. 부산·경남은 원래 광주와 더불어 민주성지의 본산이다. 3.15(부마항쟁)가 있었고, 6월 항쟁이 있었다. (1990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3당 합당을 통해 (부산·경남의) 민주세력을 통째로 등에 업고 투항한 이후로 민주진보개혁 진영이 공백상태다. 이를 복원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첫걸음이다. 5.18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기간(5.23)까지 민주주의 구간으로 설정하고 의미를 되짚어봐야 한다.
-김두관 지사와 문재인 전 실장이 대선후보로 나서야 한다고 했는데.
▲정치개혁의 끝은 지역주의 타파다. 김두관 지사는 계속 떨어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출마했다. (6.2지방선거 당시) 우리도 당선 가능성을 보고 제1야당임에도 후보를 내지 않았다. 큰 결심이 필요했다. 결국 유사 이래 처음으로 야권 후보가 경남지사로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 분들이 부산·경남에서 중심세력을 만들고 (총선에 출마할) 주자들을 규합해야 한다. 대선도 유력주자들이 다 나서서 판을 키우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스타를 배출해야 한다. 제가 말했던 스타 프로젝트다. 후보군에 들어와서 경쟁하시라, 후보가 될 수도 있고 스타를 탄생시키는 데 일조할 수도 있다. 이제 그런 결심을 하시라는 거다. 노 전 대통령 유지를 받드는 길이다.
-유시민 참여당 대표의 경우 4.27 김해 선거 패배로 책임론에 휩싸였다.
▲부끄럽게 됐다. 그러나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 보다는 내년에 어떻게 이길 것인지 부터 궁리하는 게 순서다. 내년 정권교체를 위해선 총선 승리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제 지론이다. 이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선 야권연대가 최대관건이다.
▲그것 때문에 제가 (당대표직에서) 쫓겨날 뻔 했다.(웃음) 솔직히 조바심이 자꾸 난다. 날짜는 자꾸 가는데 진전되는 것은 없다. 통합이 최선이고 연대가 차선이고 단일화는 기본이고 분열은 최악이다. 민주당 입장에선 통합 안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런데 진보정당들이 소극적이다. 옆집 이웃으로선 잘 살겠지만 같은 집에선 안 살겠다는데 강제로 끌고 올 수는 없질 않나. 현실적으로 연대나 단일화를 생각해야 한다. 논의 테이블이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 시작해도 10개월 밖에 안 남았다.
-당내 호남 기득권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당연히 기득권의 저항이 있다. 그게 없다면 걱정할 것 하나 없다. 헤쳐 나가야 한다. ‘힘을 합쳐라, 그래서 정권 좀 바꿔라’ 이게 국민의 명령이다. 그걸 안 하면 못 견딘다. 결국 국민의 명령으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물리쳐야 한다. 또 기득권은 호남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분싸움으로 국민에게 비쳐질 수 있다.
▲너무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 없다. 현실정치에서 지분 논의야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거다. (연대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밀고 당기기야 당연하질 않나. 싸워도 결론만 내면 된다. 포장할 필요 없다. 다만 논의를 빨리 하라는 거다. 그것 때문에 통합이나 연대를 깨면 안 된다.
-대선에서의 연립내각 구성에 대한 입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했던) 대연정을 반대했었다. 연정한다면 민노당과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진보개혁진영 간 연정은 바람직하다. 정책연합과 더불어 인재를 골고루 등용할 수도 있다. 노동부 장관을 민노당에서 맡는다던지, 복지부 장관을 진보신당에서 맡는다든지, 하등의 못할 이유가 없다. 연합정권을 운영하면서 내부 조율 프로세스를 거치면 된다. 완전히 방향이 다른 자민련과도 연합정부를 만들었다. 하물며 진보진영과 하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한나라당을) 이길 수 있느냐가 문제다.
-김진표 원내대표의 출범으로 구당권파, 다시 말해 정세균계의 건재함을 보여줬단 평가다.
▲사실 이번에 의원들의 고민이 많았다. 총선을 준비하는 중요한 지도부를 뽑는 선거였다. 총·대선 공약도 준비해야 한다. 이는 원내에서 이뤄진다. 때문에 의원들이 굉장히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잘 뽑았는데 새 원내지도부가 총선 승리에 기여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당내 반(反)정세균 기류가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종이호랑이를 보고 있나. 내가 비주류인데도 반감인가?(웃음) 경쟁은 경쟁이고, 지금은 다 잊고 대동단결해서 총선 승리를 위해 매진해야 할 때다.
-당 정체성 논쟁이 한창이다. 민주당 좌표 설정에 대한 입장은.
▲민주당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중도개혁인데, 당대표 시절 뉴민주당 플랜을 만들면서 중도진보로 포지셔닝했다. 책임 있는 분들의 공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예전에 가졌던 중도보다는 진보 쪽으로 조금 더 가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최근에 ‘정치에너지’란 책을 냈는데 부제로 ‘더 진보적으로’를 붙였다.
-손학규 대표의 좌표는.
▲민생진보라고 하던데… (거듭된 질문에) 나는 원래 내부싸움은 잘 안 한다. 그러다보니 날을 잘 안 세운다. 나에 대한 심한 공격도 그냥 받아주고. 내가 속이 없어서 그렇겠나. 당을 위해서다. 우리가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고, 내부싸움은 자제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그래도 묻자 한차례 물을 마신 뒤) 내가 말하지 않아도 국민들이 다 알지 않나. 정체성이란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표 개인은 다를 수 있지만 정당의 정체성은 역사와 전통의 산물이다. 자신을 당에다 맞춰야지, 당이 대표에게 맞출 수 없다.
-사실상 대권행보를 시작했다. 공식 출마선언은 언제 할 계획인가.
▲국민이 신임하면 그때 하겠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신임을 안 하는 거죠? 도대체! (여쭤보고 싶은 질문이었다고 하자) 괜찮지 않아요? 나? 다들 나보고 온화하다고만 하는데 역대 민주당 대표를 쭉 봐도 나만큼 투쟁한 대표는 없다. 1/3도 안 되는 의석수로 정부나 장관들이 야당 알기를 우습게 보는 상황에서 목숨 걸고 투쟁했다.
-박근혜 대세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은 인기도에 불과하다. 인기가 실제 표로 연결될지에 대해선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겁낼 상대가 아니다. 주위에선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후보가 되면 제일 쉬운 상대라고들 한다. 나도 동의한다. 일리 있는 얘기다. 또 신뢰를 말하는데 최소한 여의도에서 신뢰에 관한 한 박근혜보다 정세균이다.
-내년 대선 정책화두는 복지다.
▲나의 복지론은 ‘공동체 복지’다. 국가가 책임지는 보편적 복지로 가야한다는 것이 총론이다. 민주당의 ‘3+1(무상교육·의료·보육+반값등록금)’에다 ‘주거복지, 일자리복지’를 더해 ‘5+1’로 만들어야 한다. 재원 마련이 문제인데 부자감세부터 철회하고, 종국적으론 증세로 나아가야 한다. 당장은 우선순위 복지정책부터 잘 실행해서 국민들이 先체감하게 한 다음 後증세해야 한다. 박 전 대표가 복지 어젠다를 취했다고 하지만 ‘줄푸세’에 묶여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 세금을 줄이면서 어떻게 복지를 할 수 있나.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바로 세우자는 것도 MB정책과 똑같다. 결국 이명박 정권과 한 뿌리다. 성장의 원천을 중소기업·서민·중산층에서 찾는 ‘분수경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프로필
손학규 대표, 정동영 최고위원과 더불어 민주당 ‘빅3’로 꼽히는 정세균 최고위원(4선·전북)은 지난달 자신의 싱크탱크인 ‘국민시대’를 발족, 대권행보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당대표 시절 ‘선당후사’(先黨後私)를 강조,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야권연대를 6.2 지방선거에 적용시켜 한나라당 일당 독식에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관리형 대표로 올라섰으나 ‘의리’를 바탕으로 당을 빠르게 장악, 미디어법 저지 투쟁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친노진영과 486그룹이 그의 든든한 우군이다.
반면 호남을 중심으로 한 反정세균 기류는 여전히 그가 풀어야 할 숙제.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 김진표 의원을 당선시키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반감 또한 여전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대선 본선 티켓을 거머쥐기 위해선 그가 밝혔듯 낮은 지지도가 최대난관으로 꼽힌다. 부드러운 외모에 반듯한 신사상은 투쟁력이 약하다는 대외적 이미지를 낳기도 했다.
△전북 장수(60) △고려대 법학과 △미국 페퍼다인대 경영학 석사 △15∼18대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당의장 △산업자원부 장관 △민주당 대표 △(現) 민주당 최고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