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박재완 재정부 장관 취임사

입력 2011-06-02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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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기획재정부 가족 여러분!

모든 면에서 부족한 제가 엄중한 시기에 장관직을 맡게 되어 참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전임 윤증현 장관님은 탁월한 통찰력과 남다른 리더십으로 교과서에 실릴 금융위기 극복의 빛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온 국민을 대신해 경의를 표합니다. 위기 극복과 선진일류국가 진입을 위해 불철주야 애써 온 여러분의 노고에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위기 국면을 지나면서 성장과 분배 지표가 개선되고 있지만, 서민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졌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국제기구와 외신 등 바깥에서는 우리를 모범사례로 극찬하지만, 많은 국민들께서는 공감하지 않습니다. 명과 실이 부합하지 않는 셈입니다.

대외경제 여건도 중동⋅북아프리카 정세 불안, 유럽 주변국 재정위기, 국제유가 불안 등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 가족 여러분!

명성과 실상, 겉과 속, 거시지표와 체감경기가 부합하는 선진일류경제를 만들어 나갑시다. 경제 회복의 온기가 온 국민의 장바구니와 가계부, 보금자리⋅일터와 배움터로 퍼져나가도록 합시다.

아울러 순항고도에 안착하기 위해 여전히 상승 중인 우리 경제의 체질을 착실히 다져서 대내외 난기류에도 철저히 대비합시다.

이런 기조에서 저는 다음 4가지에 힘쓰고자 합니다.

첫째, 서민생활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물가 안정과 일자리 창출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물가상승 압력에는 시장친화적이면서 창의적인 대안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담합 등 불공정행위를 바로잡고, 정보 공개, 규제 개혁과 경쟁 촉진, 유통구조 개선 등 구조적 측면의 노력도 배가해야 합니다.

성장과 고용의 선순환 고리가 복원되도록, 세제⋅ 금융⋅예산⋅조달 등의 제도를 고용유인형으로 바꿔야 합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함께 높여야 합니다. 인력수급 미스매치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내실화해야 합니다.

둘째, 불확실성이 상시화된 상황에서 대내외 충격에 대비해 경제체질을 튼튼히 가꾸겠습니다.

한계기업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저축은행, 부동산 PF 대출, 가계부채 등 금융시장의 잠재적 불안요인이 연착륙하도록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급격한 자본이동 가능성에 대비하여 외환건전성을 높이는 노력도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두 차례 경제위기 극복의 일등공신이었던 재정 건전성 복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과제입니다. 정부와 공기업 살림을 더 알뜰하게 꾸려서 국민부담은 낮추고 민간 활력을 북돋워야 합니다. ‘공동목초지 비극'을 막기 위해 나라 곳간의 파수꾼 노릇을 충실히 해야 합니다.

우후죽순의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레오니다스가 이끌던 300명의 최정예 전사처럼 테레모필레 협곡을 굳건히 지켜야 합니다. 지금 당장 편한 길보다는 미래세대에 빚을 떠넘기지 않는 가시밭길을 떳떳하게 선택합시다.

셋째, 부문별 격차를 줄이고, 성장 혜택이 국민 가슴에 와 닿도록 힘쓰겠습니다.

부문간 격차와 소득불평등 확대가 21세기에 들어 전 세계가 앓고 있는 공통현상이라는 해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최

근 우리의 분배지표가 다소 나아지는 듯 보이지만, 결코 안심할 수준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글로벌 경쟁의 중심축이 개별기업에서 기업생태계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은 선택이 아니라, 서로의 생존에 불가피한 필수전략입니다.

진정성에서 우러나는 ‘높은 길’(high road)에 입각해 자율적인 상생 풍토가 정착돼야 합니다. 마지못해 따르는 ‘낮은 길’(low road)은 오래가기 어렵고 둘러가는 편법도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다만 높은 길을 촉진하는 필요 최소의 제도적 장치는 보완해야 합니다.

우리 여건에 맞는 복지 패러다임도 정립해야 합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복지함정에 머무르지 않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은 가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일하는 복지’를 기조로 지속 가능하면서도, 꼭 필요한 사람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원천 약자와 소수계층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없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선진국에 비해 취약한 나눔과 기부문화의 활성화도 절실합니다.

넷째, 미래성장동력을 확충하고 생산성을 높여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한편, 미래의 위험요인에도 미리미리 대비하겠습니다.

제조업과 수출을 중심으로 한 패러다임은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제조업은 후발개도국에 추격당하고, 서비스산업은 낡은 규제로 생산성이 매우 낮습니다. 성장구조의 DNA를 바꿔야 할 때입니다.

서비스산업 선진화는 수출과 내수의 균형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이해집단끼리의 갈등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발목을 잡아선 안 됩니다. 의료⋅교육⋅관광산업의 문턱을 낮추고, 우리가 강점을 지닌 제조업과 시너지를 구현해 생산성을 높여야 합니다.

녹색기술, 첨단융합산업 등 미래 먹을거리를 일구는 데에도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정책의 예측가능성 제고, 제도의 투명성과 법치 확립, 연구개발투자의 정합성 강화, 인력 양성과 직업훈련 내실화, 노사관계 선진화, FTA 확대 등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다각적인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합니다.

100세 사회 도래, 에너지 절약형 경제구조로 전환, 식량⋅자원 확보도 착실히 준비해야 할 과제입니다.

자랑스러운 기획재정부 가족 여러분!

경제정책이 의도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국민과 시장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소통, 현장 확인, 팀워크, 그리고 일관된 정책이 신뢰 형성의 출발점입니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멀리서 그리고 높은 곳에서 숲을 조망하는 데 익숙하므로, 숲 속 나무 한그루와 옹달샘의 아픔을 놓칠 수 있습니다. “장군은 야전병원을 방문하지 말라”는 권고도 있지만, 자녀 지갑 속에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고는 좋은 부모가 되기 어렵습니다. “책상머리가 가장 큰 전봇대” 라는 대통령 말씀을 깊이 새깁시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보듯이, 앞으로 맞닥뜨릴 문제는 우리가 과거에 겪어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난제들도 기존의 생각과 통상적인 노력만으로는 풀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익혔던 지식, 겪었던 경험, 물려받은 노하우를 버려야만 해법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마음 비우고, 늘 되돌아보며, 가슴으로 듣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이 무엇입니까. 많은 이들이 엔진이라고 합니다. 틀렸습니다. 아무리 엔진이 좋아도 전조등이 꺼지면 밤길을 운행할 수 없습니다. 창 닦이가 듣지 않는데, 빗길을 달릴 수 있습니까. 후사등, 제동장치, 축전지도 한결같이 소중합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미항공우주국(NASA)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입니다. 대통령이 청소부에게 “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주저 없이 “나는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에 공헌하고 있다”고 답했답니다.

그 어떤 전사를 보더라도 무명용사의 활약이 승패를 판가름했습니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지만, 오합지졸을 거느린 常勝장군은 더더욱 있을 수 없습니다. 기획재정부에는 미관말직도 없고 현관요직(顯官要職)도 따로 없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두 대한민국이 부여한 신성한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대통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TV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가 장안의 화제입니다. 최고 수준의 가수들이 영혼을 불어넣어 소름 돋는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더 낮은 자세, 더 열린 마음으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온 몸을 던집시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끝까지 큰 소리로 문을 두드린다면, 우리는 분명히 누군가를 깨우게 될 것입니다.

기부와 헌신은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의 특권이라고 합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여러분의 특권을 흔쾌히 행사해 주십시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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