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코스닥 상장사들의 해외전환사채(CB)를 인수하기 전에 주식을 먼저 빌려 놓고 주가가 오르면 되팔아 수백억원대의 부당 이득을 챙긴 외국계 투자은행 직원이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이석환 부장검사)는 해외CB를 인수해 주가가 오르면 미리 빌려둔 주식을 되팔아 200억원대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증권거래법 위반)로 크레디트스위스(CS) 홍콩지사(이하 CS홍콩) 직원 M(43)씨 등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5일 밝혔다.
검찰은 또 CS홍콩과 짜고 발행사를 물색해 34억여원의 수수료를 챙긴 국내 A증권 전 직원 김모(49)씨 등 2명도 함께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M씨 등은 지난 2005년 4월∼2006년 5월 N사 등 12개 코스닥 상장사가 발행한 1000억원대 규모의 해외CB를, 해당 기업에서 주식을 미리 빌리는 조건으로 인수한 뒤 빌린 주식과 일정기간 후 전환된 주식을 고가에 팔아 236억원의 이익을 챙겼다.
보통 해외CB의 공모발행은 발행사가 주관사(증권사)를 통해 발행 계획을 공시하고 인수자를 공개 모집하지만, 이 건은 거꾸로 인수자인 CS홍콩과 주관사인 A증권에서 먼저 발행사를 물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CS홍콩과 A증권은 특히 재무상태가 나쁜 기업에게 “주식을 미리 빌려주면 해외 투자자들이 CB투자를 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주가를 띄워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응한 기업들이 CS홍콩에 대주주의 주식 일부를 빌려주면 CS홍콩은 해당 기업의 CB를 인수하겠다고 나서 주가를 띄운 뒤 빌린 주식을 팔아 이익을 챙겼다.
검찰 관계자는 “해외통신 등에 CB발행 공고는 하되 다른 투자자들이 참여하지 못하게 하려고 일시, 장소, 방법은 전혀 기재하지 않았다”며 “사실상 CS홍콩을 대상으로 한 '사모' 방식임에도 '공모' 발행처럼 위장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과 CS홍콩은 대주주의 주식대차 사실이 알려져 범행이 들통날 것을 우려해 치밀한 은폐작전도 실행했다.
발행사는 CS홍콩에 미리 주식을 빌려준 사실을 숨기려고 금융감독원에 해외CB 발행 결정 신고 시 주식대차 사실을 고의로 빠뜨렸다.
발행사 대주주는 소유주식 변동보고를 하면서 주식을 빌려준 상대방이 CS홍콩이 아니라 A증권이라고 허위 기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CS홍콩은 이렇게 빌린 주식을 8개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분산 보유·처분하면서 주식 대량보유 보고를 회피했다. 대주주들에게 미리 빌린 주식은 인수한 CB를 처분해 되갚았다.
검찰 관계자는 "CS홍콩과 짜고 CB를 발행한 12개 기업 중 4개사가 상장 폐지됐다. 결국 외국인 투자를 보고 몰려든 일반 투자자들만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검찰은 주식대차 이면조건부로 해외CB를 발행한 불법 행위는 이번에 처음 적발했다고 밝혔다.
다만 회사도 함께 처벌하는 양벌규정은 위헌 결정이 났기 때문에 CS홍콩 법인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