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 업계가 엔고 사태를 우려해 정부에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다.
일본자동차공업회의 시가 도시유키 회장과 업계 노조로 구성된 자동차 총연합의 니시하라 고이치로 회장은 8일(현지시간)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현재 환율 수준은 예상을 뛰어넘은 엔고 상황이다. 산업계의 고용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정부에 신속한 대응을 요구했다.
이들은 또 “동일본 대지진 충격에서 벗어나 간신히 회복 기조에 오른 자동차 생산에 엔화 강세가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동차 업계에서 노사가 공동으로 긴급 성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엔화 강세가 업계에 치명적인 위협을 주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날 도쿄외환시장에서 엔화 값은 한때 달러당 79.75엔까지 치솟았다.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면서 달러를 팔고 엔을 사려는 움직임이 강해진 영향이다.
엔화 값은 지난 6일 뉴욕시장에서 달러당 80엔을 돌파한 데 이어 80엔대 초반에서 거래되다 7일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금융완화 기조 유지 방침이 확인된 후 계속해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엔화 가격이 80엔을 넘어선 것은 대지진 발생 직후인 3월18일 이후 2개월 반만에 처음이다.
미쓰비시UFJ신탁은행의 쓰카다 쓰네마사 외환2부 과장은 “미국의 경기 회복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엔화 강세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 업계가 긴급 성명을 낸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대형 자동차 업체 대표는 “정부가 나서지 않는 데 대해 초조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며 엔고에 대한 위기감을 숨기지 않았다.
일본 자동차 업계는 대지진에 의한 서플라이체인(부품 공급망) 혼란과 여름철 전력난 등 악조건 속에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엔화 강세는 업계의 부담을 가중시켜 국제 경쟁력을 한층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자동차 업계가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정부와 일본은행의 안일한 태도때문이다. 정부와 일본은행은 대지진 발생 직후 시장 개입으로 엔고를 가라앉혔지만 이번에는 구두 개입은커녕 뒷짐만 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애널리스트는 “외교 문제와 산업구조의 변화가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시장에 또 개입하는 것은 각국의 이해를 얻기 어려운데다 엔고가 산업계에 무조건 마이너스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니의 경우 해외 생산 비중이 높아 올해는 엔고에도 끄덕없다고 밝혔고, 도시바는 해외에서 생산해 일본으로 역수입하는 구조여서 오히려 엔화 강세가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엔고의 시발점은 버냉키 의장의 발언이었던만큼 미국의 경기 회복에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엔은 유로 등 다른 통화에 대해서는 특별한 흐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엔화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닛케이통화지수는 122.8로 동일본 대지진 직후에 비해 3%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