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공무원은 반달곰?

입력 2011-06-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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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혁 부국장 겸 증권부장

어느 화창한 날, 죽은 노동자를 관(棺)에 묻었다. 그가 평생 동안 간직해온 노동증(勞動證)도 함께 묻혔다. 죽은 노동자의 미망인은‘서류 미비’라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지 못했다.

조카는 생계 수단인 삼촌의 노동증을 찾기 위해 무덤 관리인을 찾아갔다. 무덤 관리인은“무덤을 팔 수 있도록 하는 허가 서류를 갖고 오지 않으면 절대 무덤을 팔 수 없다”고 버텼다. 조카는 무덤을 파헤쳐 관 두껑을 열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도와주는 관료들은 아무도 없었다. 급기야 조카는 야밤에 손수 묘지를 파헤치고 관을 훔쳤다. 조카는 원하던 노동증을 손에 넣었다. 그리곤 연금을 받기 위해 또 관료들을 만나러 나섰다.

쿠바 관료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 영화‘어느 관료의 죽음’줄거리다. 이 영화는 카스트로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쿠바에서는 상영금지 당했지만 1966년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수작이다. 체제가 다른 먼 나라 이야기 인데도 공감이 가는 건 우리나라나 쿠바나 정도 차이는 잊어도 크게 다를 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관료사회는 왜 바뀌지 않는 것일까.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수재들이건만 왜 개혁 1순위로 지목되는가. 앨빈 토플러는 주요 기관들을 고속도로에서 각기 다른 속도로 달리는 차로 설명했는데 기업은 시속 100마일로 변화하고 시민단체가 90마일, 가족이 60마일, 노동조합이 30마일, 정부가 25마일로 변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관료사회가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고 있다는 얘기다.

김대중 정부 시절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서울대 김광웅 교수는 위원장을 그만 둔 후 ‘관료의 틀 속에 갇혀 지낸 3년’이란 글을 남겼다. 200자 원고지 3695매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일기에는 관료사회의 보여주기 싫은 속살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눈도장을 찍으려 임명도 되기 전에 계획서를 들고 온 관료가 있는가 하면 청와대 비서실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출장 일수를 하루 줄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공무원은 색감(色感)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자신들이 즐겨 입는 감색 밖에 모르고, 이것이 그들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공무원들의 무능함과 보신주의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를 보자.

이명박 정부 초기에 쇠고기 촛불 시위를 놓고 부처 간 책임 공방이 벌어졌다. 당연히 교육과학기술부가 집중 포화를 맞았다. 그러자 교과부는“촛불 공장 설립을 마구잡이로 허가해 준 지식경제부도 책임이 있다”고 몰아붙였다.

난데없이 공격을 당한 지경부는 촛불 유통시스템 점검에 들어갔다. 쇠고기 협상의 불똥이 촛불 공장으로 튄 것인데, 관료조직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발상이란 생각이 든다.

관료조직이 생명력을 상실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보는 각도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관료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묘한 분위기가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윤은기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은 최근 행한 강연에서 공무원들을 반달곰에 비유했다. 윤 원장은 “공무원들은 정권 초기에 반짝 일해서 잘나가더라도 후반에 들어서면 동면(冬眠)에 돌입 한다”면서 그 이유를 “열심히 해서 잘나가면 다음 정권에서 전(前) 정권 사람으로 찍힌다는 학습 효과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관가에는 반달곰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정권 교체기가 다가오자 일손을 놓은 채 눈치를 살피는 공무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정권 말기에는 요직을 마다하고 해외나 국내 한직(閒職)을 선호하는 기현상도 나타난다고 한다. 정권말기에 튀어봤자 득 될 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렇다고 당사자인 관료들만 탓한다고 해서 고쳐질 일을 아니다.

관료사회를 개혁하는 원동력은 조직과 시스템, 그리고 통치권자의 리더십이다. 정권 부침(浮沈)에 관료조직이 휘둘리는 한 관료조직의 개혁은 기대할 수 없다. 맡은 바 업무를 열심히 하는 공무원은 정권과 관계없이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그래야만 본연의 일을 내 팽겨둔 채 학연과 지연을 쫓아다니는 해바라기 관료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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