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대한통운 인수를 앞두고 “그룹의 발전 속도가 너무 더디다”면서 계열사 임원들의 안주(安住) 문화를 강하게 질타한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13일 CJ그룹 고위 임원은 “대한통운 인수 전 회장님이 CJ그룹 전반에 안주문화가 만연해 있다”며 “CJ가 제2의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뿌리깊은 안주문화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CJ와 출발 시기가 비슷했던 기업들은 다 뛰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성장속도가 너무 더디다”며 “그룹 전반에 만연한 안주 문화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혁신적인 발전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고 이 임원은 전했다.
이 회장이 대한통운 인수를 앞두고 직원들에게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을 놓고 재계에서는 그룹 발전을 위해 대한통운 인수가 그만큼 절실했다는 반증으로 보고 있다. 인수전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포스코와 삼성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등 CJ가 불리하다는 여론이 확대되자 이 회장이 직접 나서 내부 조직부터 다시 추스렸다는 해석이다.
당시 이 회장은 “회장은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준비가 돼있는데, 도대체가 임직원들이 안주 문화에 빠져 도전정신이 약하다”고 말할 정도로 임직원들을 호되게 채찍질했다. 이 회장의 임직원들에 대한 독설(?)은 결국 경쟁사 보다 약 2000억원이 넘는 돈을 화끈하게 베팅해 대한통운을 CJ의 품에 올 수 있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 회장이 계열사 임원들의 안주 문화를 강하게 지적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대기업들의 발전상과 비교해 CJ그룹이 뒤쳐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삼성전자나 LG화학, 현대차 등 창업 당시 CJ 규모가 크게 차이나지 않았던 기업들이 현재에는 매출과 덩치 면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했지만, CJ그룹은 설탕이나 밀가루 등 안정적인 사업카테고리에 안주해 지속적인 도약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의 ‘쓴소리’는 최근 들어 파격적이고 발빠른 인사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월 취임한 김홍창 CJ제일제당 전 사장은 실적부진으로 취임 반 년 만에 사장 자리를 내놓았다.
김 전 사장은 정통 CJ맨으로 위기에 빠진 CJ제일제당의 구원투수로 낙점받는 등 그간의 이 회장의 인사 스타일에 부합했다. 하지만 경쟁사인 대상 출신인 김철하 대표가 사장으로 발령이 나자 이 회장이 내부 경쟁을 통해 혁신을 지속하는 인물이라면 굳이 정통CJ맨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김 대표의 CEO 발령은 파격인사로 알려졌지만 바이오 사업 부문에서 매년 20% 가까운 성장을 이끌며 지난해 사상 첫 매출 1조원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이뤄졌다.
CJ그룹 관계자는 “대한통운 인수를 전후로 회사 내에도 질적 도약을 위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오너의 쓴소리와 파격적인 인사에 대해서도 미래를 향한 채찍질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